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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문학여행-루모와 어둠속의 기적]루모,외눈박이 거인과 한판승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향하던 오디세우스 일행은 외눈박이 거인족 키클로페스에게 사로 잡혀 동굴에 갇힌 신세가 된다. 부하들이 하나 둘씩 잡아 먹히고 외눈박이 괴물은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은 우티스라고 오디세우스는 대답한다. 우티스는 그리스어로 ‘아무도 아니다’는 뜻이다. 잠든 외눈박이의 눈을 불에 달군 꼬챙이로 쑤셔대자 외눈박이는 ‘우티스가 나를 찔렀다’고 날뛰지만 ‘아무도 나를 찌르지 않았다’는 말뜻이 되어서 오디세우스 일행은 무사히 위기를 모면하고 귀환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일이 포세이돈의 심기를 또 한 번 심하게 건드려서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더욱더 어렵고 지난한 모험과 위기의 순간들로 점철되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사이렌들의 노래소리로부터 일행의 안전을 구하기 위해 귀를 밀납으로 봉하는 이야기에서 절정에 이르는 오디세우스의 기지와 영악함은 자연의 가공할 만한 힘을 인간 이성의 도움으로 우회하는 계몽주의적 인간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발터 뫼르스의 ‘루모와 어둠속의 기적’에서도 주인공 루모가 키클로페스에게 먹잇감으로 사로잡히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향 이타카로의 귀환에 나선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존재를 ‘우티스’라고 명함으로써, 즉 자신의 존재 자체를 가급적 낮추면서 위기를 넘기게 되는 반면에, 뫼르스의 환상 소설에서는 늑대와 노루의 유전자를 지닌 ‘볼퍼팅어’ 새끼인 젖먹이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맡게 된 ‘은띠’의 흔적을 뒤�v아야 할 터였다.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이빨들이 잇몸을 뚫고 나오는 고통과 갑자기 말을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먹잇감을 찾아 나온 악마바위의 외눈박이들에게 주인공은 말을 걸음으로써 기꺼이 그들의 포획물이 된다. 키클로페스의 먹이 창고에서 만난 수 백 년 묵은 상어구더기 스마이크를 통해서 새끼 볼퍼팅어는 루모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루모’는 스마이크가 즐겨하는 도박게임의 명칭이란다. 이어지는 이 환상 소설의 줄거리는 루모의 모험과 무용담 일색으로 꾸며진다. 성장이 무척 빠르고 용맹무쌍한 볼퍼팅어의 자손답게 루모는 스마이크의 지시에 따라 키클로페스들의 약점인 혀를 공격하여 악마바위의 동굴을 탈출하게 된다.

‘차모니아’대륙에 오른 루모는 ‘은띠’의 흔적을 �v아 동족들의 도시 볼퍼팅을 찾아가고 거기에서 은띠의 비밀이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 랄라를 위한 보석함을 얻기 위해 잠시 도시를 비운 사이 지하세계의 종족들이 온 도시의 동족들을 지하로 납치해 가고 용감무쌍한 루모가 지하세계에 내려가서 동족과 사랑하는 랄라를 구출해서 되돌아온다는 이야기얼개는 수많은 곁가지 이야기와 수많은 낯섬과 섬뜻함의 묘사, 간간히 섞여 있는 삽화들, 단선적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여러 메타포들과 잘 어울려서 루모의 오디세이를 잘 그려내고 있다.

키클로페스에 사로잡힌 장면에서 오디세우스가 거인의 외눈을 공격해서 눈을 멀게하는 반면에 루모는 외눈박이의 혀를 공격한다는 것은, 도박게임을 의미하는 루모라는 주인공의 이름과 함께 뫼르스 소설의 주제의식을 짐작하게 한다. 더 이상 보여지는 대로 믿을수 없다는 현실 인식은 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환상 소설의 단골 소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렇듯 저렇듯 세치 혀로 새로이 이야기되어 질뿐이다.
더욱이 우연성의 법칙에 근거한 도박게임은 주어진 운명과 미래의 예측이라는 바람들을 헛된 망상으로 치부해 버리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뫼르스의 소설에서는 ‘구리처녀’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한 랄라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이야기는 남아있다. 왜 일까. 키클로페스의 눈과 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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