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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 유배지 남해 노도(櫓島)에서의 휴식



【노도(남해)=송동근기자】노도(櫓島)로 가기위해 백련마을을 출발한 통통배에 몸을 싣는다. 이 섬에는 오가는 배가 없어, 벽련마을의 어부에게 배를 빌려타고 들어가야 한다. 하얀 물살의 파도를 가르며 달리기를 약 15분. 이내 아득히 멀리 외로운 섬 하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섬에 닿으면 남해문화원에서 지난 1997년 세운 서포(西浦) 김만중(1637∼1692)선생의 기념비가 보이고, 이 곳을 돌아 산에 오르면 서포의 유배지였던 골짜기가 나온다. 이 곳에 묻혔던 그의 무덤은 육지로 이장을 해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그가 고뇌속에 삶을 이어가던 산속의 초옥(草屋)이 인상적이다.

노도는 경남 남해 엥만강의 입구 상주면 벽련리에 있는 작은 섬(0.41㎢). 조선시대 고전소설 ‘구운몽(九雲夢)’으로 널리 알려진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다.

이 곳에서 서포는 1689년부터 3년간 유배생활을 한 뒤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정치와 연루된 유배와 복직의 연속이었다. 어머니를 한 없이 그리워하는 지극한 사모의 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서포는 이 섬에서 자기가 파 놓은 옹달샘 물을 마시고, 솔잎 피죽을 먹으며 근근이 연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곳은 물고기가 훤히 들여다 보일 만큼 물도 맑고, 볼락, 농어, 감성돔도 잘 잡힌다. 특히 주옥같은 ‘서포만필’ 등을 집필한 곳으로, 아름다운 풍광 또한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서포는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고,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익겸의 유복자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기도하다. 그의 어머니 해평 윤씨는 인조의 장인인 해남부원군 윤두수의 4대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방(昉)의 증손녀다. 서포의 어머니는 흔히 맹자의 어머니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자녀교육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서포는 어머니 윤씨의 남다른 가정교육에 힘입어 성장, 그의 생애와 사상도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윤씨는 한때 생활이 어려워져 베짜고 수놓는 것으로 생계를 이으면서도, 자녀들에게는 학업에 방해가 될까봐 이를 숨겼다고 한다. 이런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서포는 1665년 문과에 급제, 지평(持平)과 수찬(修撰) 등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임금 앞에서 직언도 불사하는 등의 강직성으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김씨 성을 쓰지 못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예조 참의로 복귀,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오르는 7년간은 서포의 생애에 있어서 황금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숙종이 정비인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 하자 그는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당한다.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것이 ‘사씨남정기’다. 이런 와중에 그의 어머니 윤씨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던 끝에 병으로 숨졌으나,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장례에도 가보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사상과 문학은 독특한 특징이 엿보인다. 주자의 논리를 비판하고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점 등에서 사상의 진보성을 찾아볼 수 있고, 그가 주장한 ‘국문가사 예찬론’ 역시 문학이론에서도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후 허균의 뒤를 이어 소설문학의 거장으로 나타난 그는 우리 문학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다. 즉 소설을 천시했던 조선시대에 소설의 가치를 인식,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은 마땅히 한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후 한글소설의 황금시대를 가져오게 한 주인공이다. 따라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국자의식(國字意識)은 높이 살 만하다.

특히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해 쓴 ‘사씨남정기’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말로 유배지에서 쓴 소설 ‘구운몽’은 조선후기 실학파 문학의 중간에서, 지금도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된다.


남쪽 바다 끝의 외로운 섬, 노도. 이 곳으로의 여정은 고뇌에 찬 서포 문학세계와 함께 정치적으로 불운한 삶을 살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당시 그가 지녔을 절망과 고뇌,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눈을 감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dksong@fnnews.com

■사진설명=노도에서 좁은 산길을 따라 오르면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하던 산중 초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해(노도) 가는 길

서울-남해 370km

-대진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순천방향-사천IC-창선·삼천포대교-남해(노도)

-항공: 김포-여수·사천공항-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