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애정을 담아…혜원의 ‘특별한 그녀’
화가들이 모델을 그린 그림과 연인을 그린 그림에는 차이가 있다. 모델이 그림의 소재라면, 연인은 애틋한 감정이 깃든 존재다. 사랑하는 만큼 붓질마다 정성이 깃들게 마련이다.
초상을 그리는 과정은 곧 상대방을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이다. 얼굴을 그리면서 상대방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새삼 가슴에 새기게 된다. 제삼자가 볼 때는 단순히 한 사람의 초상일 뿐이지만 화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애정의 농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존재인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서는 도무지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만큼 그림은 상대방과 화가의 마음을 담고 또 닮는다.
■‘미인도’를 사랑한 혜원의 마음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는 곱고 아름답다. 윤기 있는 가체머리에 둥근 얼굴, 버들 같은 눈썹과 초승달 같은 눈, 다소곳한 콧날과 앵두 같은 입술 등 어린 태가 물씬 풍기는 청초한 모습이다. 게다가 수줍은 듯 매만지는 삼작노리개와 옷고름, 몸매를 드러내는 짧은 저고리에 펑퍼짐한 치마는 상체를 더욱 작게 만든다. 가히 뭇 사내들을 뇌쇄시킬 만한 미모다.
혜원이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비록 모델이 기녀였지만 특별한 감정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장안의 수많은 기녀 중 유독 이 여인을 화폭에 남겨놓았을까. 가냘픈 얼굴을 따라 흐르는 선은 깔끔하기 그지없고, 엷은 채색은 단아한 자태에 춘의(春意)를 더한다. 약간 고개를 숙인 표정이 교태스럽다. 그는 이 그림으로, 영원히 그녀를 가슴에 새겨둘 수 있지 않았을까.
‘미인도’는 혜원의 걸작이다. 남녀간의 사랑과 양반과 한량이 기생과 어울리는 모습을 담아온 혜원은 많은 기녀를 그렸으면서도 이렇게 단독상으로 그린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이 그림 외에도 혜원의 미인도가 더 있다. 그렇지만 이 그림이 지닌 애띤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 ‘미인도’는 <혜원풍속도첩>에 등장하는, 작게 그려진 수많은 기녀와 달리 기녀의 모습을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이 자세히 그렸다. 사실 이 그림은 혜원의 그림 중에서도 유난히 크다.
■패션 속에 숨은 에로티시즘
처음에는 서민의 생활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조선후기 풍속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점차 신분갈등과 애정문제 같은 사회적인 문제까지 폭을 넓혀간다. 그러다가 에로티시즘의 표현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 중심에 신윤복이 있다. 선구자로 단원 김홍도가 있으나 에로틱한 표현에서는 혜원이 압도적이다. 그의 기생의 풍모에는 도회적인 세련미가 넘치고 그것을 표현한 선묘나 채색도 매우 감각적이다.
‘미인도’는 조선시대 후기 패션의 특징인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선정성이 은근히 드러나 있다. 즉 짧은 저고리로 표현된 가냘픈 상체, 이런 상체와 대조적으로 속옷에 의해 겹겹이 싸여 부풀려진 하반신, 속옷의 노출 등으로 선정성을 강조한다. 이런 기녀들은 당대의 패션 리더였다.
일반적으로 의복은 두 가지의 모순된 경향을 갖는다. 하나는 인체를 은폐하여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체를 노출시켜 내적인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 ‘은폐미’와 ‘노출미’는 하후상박과 더불어 조선후기 복식의 대표적인 에로티시즘 미학이기도 하다.
■풀어진 옷고름과 노출된 속옷
에로티시즘과 관련하여, 눈여겨볼 곳이 두 가지 있다. 먼저 풍성한 배추형의 치마 사이로 살짝 드러난 속바지와 외씨버선이다. 이는 치마의 풍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속옷을 여러 겹 껴입어 인체를 은폐한 것과는 다르다. 마치 속살을 보여주듯, 치마 속에 감춰져 있어야 할 속옷을 슬쩍 노출시켜 선정적인 요염미를 풍긴다.
요즘 여성들이 미끈한 각선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미니스커트를 입듯이,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치마를 짧게 하여 속바지가 조금이라도 더 노출되게끔 한 것이다. 이런 노출은 속옷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래서 노출되는 부위에만 고급 옷감을 덧대는 장식을 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살짝 풀어진 고름이다. 여미어져 있어야 할 고름이 풀어진 채 아래로 늘여져 있다. 그것도 풀다가 말았다. 그쪽으로 노리개와 고름을 만지작거리는 손이 있다. 그래서 감상자의 시선은 은근히 고름 주변으로 향하게 된다. 혜원이 보여주고자 한 것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기녀의 노리개 자랑이 아니라 고름이 아니었을까. 마치 꽃잎이 벌어지기 직전 같은 순간을 말이다.
혜원의 다른 그림들처럼 ‘미인도’가 뛰어난 것은 그의 탁월한 조형능력 때문이다. 은폐와 노출의 미학을 적절히 구사하여, 에로티시즘을 극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여기에 혜원의 마음은 생기를 불어넣는다.
고개를 숙여 응시하는 기녀의 표정에서 핑크빛 연정이 풍긴다. 누구를 향한 연정일까. 혜원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혜원은 다만 그림 곁에 이렇게 적었다. “높은 의자에 걸터앉은 여인의 가슴속에 감추어진 춘의를 어찌 능숙한 붓끝으로 전신할 수 있으리오.”
‘키워드’
일에 대한 애정은 결과로 나타난다.
무슨 일이든 애정을 가지고 하면, 그만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애정이 없으면 일이 고통스럽지만 애정이 있으면 일이 즐겁다. 애정은 인생을 명품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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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설명=신윤복, 「미인도」, 비단에 채색, 114.2×45.7㎝,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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