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

군산CC,폐염전에 ‘스코틀랜드풍 잔디밭’ 81홀



【군산=김세영기자】“워메, 징한 것. 끝이 안 보이네.”

전북 군산CC 정읍코스 3번홀(파7).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더니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절로 나온다. 이 홀은 블랙티 기준으로 무려 1004m. 블루티 기준으로도 963m이고, 화이트티에서도 933m나 된다. 세계 최장홀이다.

거리 발음을 따 일명 ‘천사홀’로 불리지만 실상은 전혀 딴판이다. 파를 잡는 골퍼가 거의 없어서다. 아마추어 골퍼에게 파는 하늘의 별따기다. 잘 해야 더블 보기 정도다.

왜 그런고 하니, 파를 잡기 위해서는 티샷을 똑바로 보낸 뒤에도 우드로 200m씩 4번을 더 똑바로 날려야 한다. 그리고 2퍼트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아마추어 골퍼가 우드를 다섯번 연속 정확하게 친다는 건 힘든 일. 한번이라도 실수하는 날엔 더블 보기 이상을 각오해야 한다.

천사홀의 진면목을 느껴보기 위해 골프장 측에 양해를 구하고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 블랙티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다. 그린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캐디는 그저 똑바로 치라고만 한다. 절반쯤 왔더니 그제서야 저 멀리 깃대가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른 클럽은 사용할 생각도 않고 오직 3번 우드 하나만 달랑 든다. 샷을 날린 후 걷고 또 걷는다. 그린에는 겨우 7타만에 올라섰다. 2퍼트로 마무리, 결국 더블 보기를 했다. 캐디가 옆에서 “그나마 좋은 스코어”라고 위로의 말을 던진다.

이 홀과 관련돼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어떤 아주머니 4명이 이 홀에서 헤맸는데, 이 홀에서 4명이 친 타수의 합이 무려 108타였다는 것. 믿거나 말거나지만 사실이라면 그 4명은 분명 ‘골프의 108번뇌’를 뼈저리 느꼈으리라.

이 곳의 또 하나의 명물은 김제코스 1번홀이다. 블랙티 기준으로 661m. 이전까지는 강원도 삼척 파인밸리CC 밸리코스(657m)가 파6 기준 최장홀이었지만 그 기록을 깼다.

군산CC는 폐염전 부지에 건설됐다. 광활한 130만평의 땅에 구릉만 있을 뿐 사방은 딱 트였다. 황량한 평야, 거센 바람, 잿빛 하늘, 호숫가의 갈대, 그리고 러프 등이 어우러져 스코틀랜드의 어느 골프장을 연상시킨다.

현재 군산CC는 회원제 18홀과 퍼블릭코스 36홀 등 총 54홀을 오픈했다. 나머지 27홀까지 완공되면 총 81홀이나 된다. 여기서는 거의 모든 것 앞에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천사홀과 81홀 규모가 그렇고, 코스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호수 길이만도 45㎞다.

군산CC를 찾는 이용객의 대부분은 수도권 골퍼다. 이른 아침이나 전날 밤에 도착해 하루에 36홀을 돌 수 있는 이점이 있어 골프연습장 월례회나 각종 동호회 행사 등이 많다고 하다. 비용도 저렴하다. 퍼블릭코스 18홀을 도는 데 주말 요금이 12만원이고, 주중에는 8만원에 불과하다. 조조할인 혜택을 받으면 7만원에 칠 수도 있다.

해 뜰 때부터 해질 무렵까지 골프를 즐기니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아니라 ‘여명에서 황혼까지의 골프’다. 골프장은 앞으로 수도권 등 외지 골퍼들을 위해 골프텔도 오픈할 예정이다.

라운드 후 클럽하우스에 자리를 잡으니 서해안의 낙조가 석양을 검붉게 물들였다.
아직 잔디가 누렇지만 땅 밑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그 기운이 땅을 뚫고 나오는 날, 골프장도 울긋불긋 골퍼들로 물들여질 전망이다. 쓸모 없던 폐염전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freegolf@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