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30일 마무리된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기관투자가 ‘입김’이 세졌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특히 기관들은 감사 추천을 통해 사외이사를 늘리고 주주이익 침해 땐 반대의결권 행사 ‘으름장’으로 경영진에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소액주주 운동은 예상만큼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올 주총에서는 과거와 달리 대기업보다는 중견그룹에서 분쟁이 잦았고 고배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적극적
올해 주총 시즌은 한마디로 기관투자가들의 위력을 새삼 느끼는 자리였다. 특히 자산운용사들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들이 크게 늘면서 동아제약의 경우처럼 경영권 분쟁 등 민감한 사안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 수가 25개에 달했고 한국투자신탁운용도 28개로 주총계 ‘큰 손’으로 떠올랐다.
또 한국지배구조개선펀드(장하성 펀드)는 지난 주말 벽산건설 주총에서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하면서 경영진과 충돌하는 등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장 펀드는 앞서 지배구조개선에 합의한 태광산업, 대한화섬 등의 주총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감사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정관변경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국민연금도 과거와는 달리 내부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마련하고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마찬가지다.
증권선물거래소가 기관투자의 의결권 행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의사표시 안건수는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자기들(기관투자가) 이익이 달려 있어 주주가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며 “특히 이사선임과 이사보수한도 증액 등에 예전보다는 좀더 민감해졌다”고 분석했다.
■중견그룹서 경영권 분쟁 잦아
올해 주총에서는 대기업보다 중견그룹이나 중소형 상장사에서 분쟁이 잦은 특징이 있다. 이는 시민단체가 재벌개혁 등의 명분으로 주장한 지배구조 개선 요구는 줄어든 반면 회사의 경영권이나 발전 방향을 놓고 경영진과 주요주주간 입장차가 명확하게 갈려 표대결로 치닫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례로는 동아제약, 샘표식품, SBS 등이 대표적이다. 동아제약은 경영권 문제로 부자간 갈등을 보이다가 주총을 앞두고 타협을 봤고 SBS는 주총에서 지주회사 전환이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우리투자증권 사모펀드인 마르스 1호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샘표식품은 지난주 주총에서 표대결로 이사선임 문제를 매듭지었지만 아직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은 올 정기주총에서 예상만큼 두드러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정기주주총회 결과를 보고한 600여개 상장사 가운데 상정된 안건이 부결된 사례는 10여건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소액주주들이 주총에서 상정 안건을 부결시킨 곳은 진양화학, 일성신약 등이다.
■경영권 방어 정관개정
이번 주총 시즌에서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기 위해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제 등 경영권 방어책이 잇따라 정관에 도입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번 주총에서 이사진의 임기를 달리 정하는 ‘시차임기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한올제약은 적대적 M&A로 이사나 감사가 해임되거나 정관을 변경할 경우 출석 주주 의결권의 4분의 3과 발행 주식 총수의 5분의 4 이상 찬성을 얻도록 하는 초다수결의제를 통과시켰다. 세종공업은 ‘이사 임기를 3년 이내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정관에 명시, 시차임기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지난해 동승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셋톱박스 전문업체 홈캐스트는 주총 결의방법을 ‘출석주주의 70% 이상, 발행주식수의 50% 이상’으로 강화했고 모바일솔루션 업체 인프라밸리도 황금낙하산제를 통과시켰다.
솔믹스는 ‘시차임기제’를 도입하기 위한 정관변경 안을 주총에 상정해 놓은 상태다.
한편, 경영권 방어 조항을 자진 삭제하거나 포기한 상장사들도 많았다. 고제는 이번 주총에서 황금낙하산 도입 제도를 정관에서 삭제시켰고 참앤씨와 신성이엔지는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추진했으나 주총에서 안건을 자진 부결시켰다.
/grammi@fnnews.com 안만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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