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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CEO가 만난 사람] 이종규 코스콤 사장,작가 김하인을 만나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증권가에서는 준비작업이 분주하다. 특히 주식거래와 파생상품거래, 채권거래 등이 모두 전산화 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보기술(IT)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코스콤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코스콤은 사람으로 치면 혈관을 서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증권·선물거래 시스템은 물론 자본시장 관련 전산업무를 개발·운영하고 공인인증·자본시장 데이터 사업도 한다. 또 일반 기업이나 기관의 전산시스템도 구축한다.

자본시장의 핵심 IT인프라를 담당하고 있는 코스콤의 수장 이종규 사장과 이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시 ‘잠이 든 당신’의 작가이자 소설 ‘국화꽃 향기’의 저자인 김하인씨가 만났다. 인생철학과 삶의 가치를 논한 1시간30분은 금방 흘렀다.

<증권가 CEO 릴레이 인터뷰 ②이종규 코스콤 사장, 작가 김하인을 만나다>

―동석자 :이장규 증권부장

잠이 든 당신

잠이 든 당신을 들여다봅니다./ 어느 먼길을 걸어와 지금 당신이. / 중략 / 나 같은 남자 뭘 믿고. / 더없이 소중한 마음과 몸을 맡기고/ 그저 고맙고 감사해서/촛불같은 당신 잠과 꿈을 꺼뜨릴까. / 조심조심하며 밤새 저는 당신 마음을 들여다볼 뿐 입니다./<김하인의 눈꽃편지> 중에서

#촛불같은 당신

숨가쁜 일정을 소화해야하는 증권가 CEO, 그 것도 증권과 정보통신를 엮는 코스콤 사장과 맑은 영혼을 조율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와의 만남.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그래서 한편으론 뜬금없을 것 같은 둘 사이의 만남은 예상과 달리 상당부분 공통점를 공유하고 있었다.

‘잠이 든 당신’이라는 한 편의 시가 매개체가 돼 둘을 묶었다. 그들에게 풍겨나오는 끊임없는 ‘열정’도 그들사이의 공통분모였다.

증권전산시스템에 대한 이 사장의 열정은 남다르다. 코스콤의 IT기술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한수 위라고 여겨졌던 일본을 제치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톱클래스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동경거래소 전산시스템 오류로 인한 증시혼란은 ‘코스콤 사전에는 생각조차 할수 없다’는 게 이 사장의 자신감이다. 그런 열정이 9급 세무서 말단직원이었던 그를 40년만에 재경부 세제실장(1급)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예민한 감수성으로 때론 시로, 때론 소설로 독자의 영혼과 감성을 자극하는 김하인작가 역시 작품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다. ‘문학 한류열풍의 주역’이란 꼬리표는 그 열정에 대한 보답이다. 그가 쓴 ‘국화꽃향기(영화 가을동화의 원작)’ 등 소설을 비롯해 각종 작품들이 중국어로 변역돼 수 백만부씩 판매됐다. 감성문학이라는 한 우물을 판 그의 열정이 이를 가능케 한 셈이다. 김 작가를 두고 ‘자극적인 욕망의 시대에 고전적인 사랑을 말한다’는 풀이가 가능한 대목이다.

외로움과 고독도 공통점이다. 이 사장은 “CEO는 외견상으론 화려하지만 사실 고독한 직업”이라며 “중요한 의사결정은 항상 사장의 몫이며 이 짐은 누구에게도 떠넘길수 없고 혼자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도 “외로운 작업 임에도 순수문학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가슴속의 뜨거움이었다”며 “최근 유행처럼 번진 일본문학에 맞닥뜨릴 수 있는 내공을 위해 전투적인 마음가짐으로 임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작품활동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게 쓸쓸하게 하는 지는 작가만이 알 뿐”이라고 말했다.

#잠이 든 당신

2월25일은 이종규 사장이 일선 세무서에서 재무부(현 재경부)로 들어온 날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32년이 흐른 지난해 2월25일 이 사장은 국세심판원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쳤다. 공무원을 마치면서 그는 이임사 대신 직원들에게 김하인 작가의 시 한 수를 보냈다. ‘잠이 든 당신’이 그것이다.

그에게 당신은 여러가지 의미란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 그동안 그가 거쳤던 국세청, 세무서, 재경부, 국세심판원 등의 임직원도 포함된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코스콤 사장실. 대담을 위해 강원도 양양 자택에서 새벽에 출발, 막 서울에 도착한 김하인 작가를 반갑게 맞은 이 사장은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책장에서 서류를 가져왔다. 국세심판원 이임식때 썼던 간단한 이임사와 싯구, 명언 등이 적혀진 서류다.

이 사장은 “이임식 이후에도 김 작가의 시를 많은 직원들에게 소개해 줬습니다. 그때마다 많은 분들이 마치 귀중한 보석을 받은 양 기뻐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8구절에 불과한 시가 가진 강한 힘을 느낀 순간이다.

김 작가는 “당시 시집으로는 드물게 5만부 이상이 팔렸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시 과정은 생각보다 아주 힘든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네요”라고 화답했다. 김 작가는 또 최근 일본 문학작품의 유입으로 국내 순수문학 시장이 위축되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김하인류(類)’로 불릴 정도로 감성문학에서 한 획을 그었던 그로선 당연한 아쉬움이다.

이 사장도 “IT기업 수장으로서 가끔 첨단이라는 말이 거슬릴 때가 있고 너무 각박하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한편의 좋은 시와 경구를 읽으면 많은 힘이 됩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감수성은 한국인이 가장 잘 표현하고 느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당신’이라는 친숙한 단어가 두 사람에겐 참 따뜻하게 간직된 것이다. 김 작가는 “아내의 잠든 모습을 보고 시상이 떠오른 것이지만 각각의 독자들에게 당신은 소중한 사람임에 분명해 보이네요”라고 덧붙였다.

#어느 먼 길을 걸어와

지난 1964년 고교 졸업후 곧바로 세무서에 취직한 이사장은 이후 사병으로 군에 입대한다. 국방부 정보부대에서 근무하며 장교, 하사관 등 15명과 함께 암호병교육을 받았다.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장교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둔 이 사장은 계급과 상관없이 전문성만 있으면 어떤 분야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회상했다.그의 머릿속에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가 되자”는 생각이 굳어진 순간이다. 제대이후 그는 국세청, 재경부, 전국 세무서를 돌며 세무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특히 재경부에서 국세청으로 들고 나기를 7차례나 할 정도로 그의 전문성은 높이 평가받았다. 지난해 2003년 부동산대책 때 그는 국세청에서 재경부로 긴급 파견돼 투기억제를 위한 법과 제도 개혁에 나섰다.

김 작가는 “초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오랜 시간을 ‘나홀로 유학’을 하면서 글쓰기에 흠뻑 빠졌습니다. 약 20년간 시, 소설, 동화를 쓰면서 보냈는데 그중 10년동안은 세상과 단절됐었죠”라고 말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국 언어조탁자로 변신한 그다. 하지만 그의 글에선 외로움이란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평가다. 감성소설, 순수시, 계몽동화 등에 내재된 ‘따스함’과 그의 지나간 궤적은 딴판인 셈이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두 분 모두 시작부터 색달랐다”는 질문에 이 사장과 김 작가는 모두 웃으며 각자 “시기와 상황이 맞물려 운이 따랐을 뿐이다”, “외로운 유학생활과 1평 남짓한 인사동 쪽방시절의 힘든 경험이 오히려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는 반응이다.

“일본엔 장인정신과 최근 들어 부각된 ‘오타쿠(매니아)’들이 늘고 있다”는 이 사장의 말에 김 작가는 “작가가 아니면 현재 사업을 하거나 장사꾼이 됐을 거라고 주위에서 말합니다. 시와 소설이 제겐 평생을 함께 갈 장인정신을 갖게 한 듯 하네요”라고 답했다.

#더 없이 소중한 마음과 몸

9급 말단 공직자로 출발해 사실상 최고위직(1급)에 오른 이 사장은 정년퇴임을 마다하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유로 지난해 돌연 사표를 제출, 코스콤 사장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이 사장은 “나무를 크게 자라게 하려면 옮겨 심어야 한다”며 “더 승진하는 것보다 어떻게 끝내는 가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퇴직 후 산에 나무를 심으며 제2의 생활을 시작한다는 계획은 일단 코스콤 임기 이후로 미뤘다.

김 작가 역시 지금까지 60여편이 넘는 작품을 내놨다. 그는 “성공한 작가가 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며 “20년 동안 슬럼프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독자들의 성원과 관심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우물을 판 작가로서 매너리즘에 빠질 법도 한데 김 작가는 정색을 한다. 그는 “지금까지는 20대의 감수성에 맞춘 고전적이고 순수한 사랑에 초점을 맞춰왔다”며 “하지만 이젠 40∼50대 중장년층을 위한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계획을 내비췄다. ‘부부’라는 제목으로 구상 중인 작품에서 중장년층의 마음 속에 내재된 열정과 사랑을 아주 솔직히 표현하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마음 먹기 마련입니다. 처지와 상황, 시간 등은 변명에 불과하죠” 이 사장 역시 9급 공무원에서 1급까지 오른 게 ‘특별한’ 일로 취급받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장의 경영철학은 무엇일까. “경영철학이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지만 직원들에게 경쟁력을 키우라고 강조합니다.
개개인의 경쟁력이 높아져 회사 경쟁력도 동시에 높아진다면 급변하는 환경에서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게 이 사장의 조언이다.

삶에 대한 철학은 이어진다. “또 하나 가장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족과 건강을 우선시 하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정리=godnsory@fnnews.com 김대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