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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오지호 ‘남향집’



※밝고 명랑한 ‘햇빛’ ‘한국적’ 인상주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서양화가 들어온 것은 일본을 통해서였다. 이 말은 원산지인 유럽에서 직수입한 것이 아니라 일본화된 서양화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미술계에는 인상주의가 풍미하고 있었다. 조선의 유학생들이 접할 수 있었던 그림도 자연히 인상주의 풍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서양화=인상주의 풍의 그림’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낳았다. 이는 단순한 형식을 모방한 수준이었지 인상주의의 조형적인 실체를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난생 처음 서구의 낯선 그림형식을 배우는 것이었던 만큼, 기량을 습득하는데 급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형이념의 본질을 추구하며 인상주의가 한국적 인상주의로 정착하기까지 오지호(1905∼82)의 역할이 컸다.

한국 인상주의 화풍의 개척자로 불리는 오지호는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1931년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935년부터 10년간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한다. 이때 밝고 투명한 색채와 경쾌한 붓놀림으로 우리 산하의 풍광을 포착하는데 주력한다. 부단한 노력 끝에 도달한 그의 화풍은 인상주의를 단순히 기법적으로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고, 밝은 빛으로 토착화시키기에 이른다.

■햇빛으로 도금된 명랑한 남향집

‘남향집’은 오지호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그가 해방 무렵까지 살았던(1935∼44) 개성의 초가집이 소재다. 봄이 오는 무렵, 노란 초가집과 아직 잎이 돋지 않은 늙은 감나무 한 그루, 문을 나서는 빨간 옷의 소녀와 양지쪽에서 한가롭게 졸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돌로 쌓은 축대와 작은 나무 두 그루가 그림의 주요내용이다. 초가지붕과 담벽 위로 쏟아지는 봄볕처럼, 화가의 행복했던 개성시절을 보여주는 듯하다.

형식적으로 보면, 우선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밝고 명량하다. 사물의 구체적인 디테일보다 따뜻한 분위기 조성에 작업의 무게가 실려 있다. 고목의 그림자조차 파란색과 보라색이다. 짧은 터치가 경쾌한 생명감을 준다. 눈부시다.

특히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고목의 그림자다. 초가지붕과 담벽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는 그림을 특별하게 만든다. 파란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진 그림자는 유난히 눈길을 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림자는 검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림자를 검게 처리하지 않았다. 그곳에도 빛이 있다고 생각하여 파란색과 보라색을 사용했다. 그래서 인상주의 그림은 어둡지 않고 밝다. 이 그림의 그림자는 붓 터치를 짧게 끊어가면서 리드미컬하게 반복해서 칠했다. 잔잔한 터치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경쾌하다.

그림에 생기를 주는 것은 또 있다. 화가의 둘째딸인 빨간 옷의 소녀와 양지쪽의 강아지다. 적막한 초가집 풍경에 발랄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개성시절은 오지호의 회화가 만개한 때였다. 더욱이 이때는 그가 인상주의 화풍을 토착화시킨 성과를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1938)으로 출간하여 세상에 널리 알린 때였다. 화가의 넘치는 의욕은, 이 ‘2인 화집’이 출간된 다음해에 그려진 ‘남향집’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림이 화가의 마음이라면, 이 그림의 명랑한 색감과 고목의 대담한 그림자는 그런 자신감의 반영이라 하겠다.

■일본제 인상주의를 한국적 인상주의로

서구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햇빛을 찾아다닌 것처럼 오지호도 그랬다. 몇 시간씩 강한 햇빛 속에 이젤을 세우고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그렸다. 그는 이렇게 외친다. “광(光)의 약동! 색의 환희! 자연에 대한 감격―여기서 나오는 것이 회화다.”(위의 화집에서) 그에게 색채는 곧 빛이었다. 빛을 사랑한 이상 색채는 밝고 찬란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조형이념적인 면에서 인상주의의 본질에 접근해갔다.

오지호가 동경 유학시절에 배운 그림은 일본화된 인상주의였다. 그런데 그는 ‘메이드 인 저팬’표 인상주의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것을 버리고 본격적인 인상주의에 접근해간다. 이는 일본과 우리 풍토의 차이를 자각한데서 비롯된다. 일본의 자연이 습기가 많아서 불투명하다면, 우리는 대기가 건조하여 자연이 맑고 투명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우리 풍토에 근거한 그림 스타일이 요구된다. 그는 이런 자각으로, 우리 산하의 풍광을 자연과학적인 입장에서 작품과 이론으로 실천했다.

그래서 혹자는 오지호를 두고 “인상주의적인 기법을 기법으로서만 소개하였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연에 소화된 우리나라의 인상주의 회화를(정규) 시도한 화가”로 평가한다.

화가로서 오지호의 뛰어난 점은 남의 것을 배우되 자기화한 데 있다. 일본의 인상주의를 습득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치열한 탐구로 인상주의의 본질을 향해 직진했다. 그 결과 우리 자연과 궁합이 맞는 한국식 인상주의 화풍을 찾아냈다. 겸재 정선이 실경산수로 우리 산천을 그림에 담았듯이, 오지호는 우리 체질에 맞는 풍광을 그렸다. 그는 이 땅을 밝힌 햇빛과 색채를 평생 사랑했다.

■키포인트=배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운 바를 자기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의 체질에서 나온 생각과 방법을 배우되, 그것을 자기 체질과 생각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자기화한 실력이 경쟁력이다.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오지호, ‘남향집’·캔버스에 유채·80.5×65㎝·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