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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소극장 배우의 호흡까지 들려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하얀 가운을 입은 ‘닥터리’가 뚜벅 뚜벅 걸어나오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첫 줄 양끝에 앉은 분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극 중간에 불이 꺼지면 다리와 얼굴을 안쪽으로 최대한 굽혀주세요. 안그러면 다치거든요. 어디 연습해 볼까요? 안으로 쭉∼”

당황한 관객들은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한다.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공연중인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시작이다.

‘오!당신이…’가 이런 특이한 주문을 하는데엔 사연이 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줄거리 탓에 장면 전환이 잦다. 그러다보니 조명만 꺼졌다 하면 침대며 책상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배경을 바꾸기 위해 큰 벽을 통째로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다. 무대가 워낙 좁다보니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스텝들에게 발을 밟히거나 소품에 몸을 부딪히는 관객도 종종 나왔다. ‘닥터리’의 엉뚱한 부탁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묘안이었던 것. 관객들은 이 역시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소극장 공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극의 메카였던 대학로 소극장이 뮤지컬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화려함과 웅장함을 중시하던 뮤지컬 관객들도 이젠 대학로 소극장을 즐겨 찾는다. 관객과 무대의 벽을 없애고 친밀함을 한껏 살린 게 소극장의 장점. 좁고 불편한 좌석에도 바로 그런 매력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소극장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어떤 소극장이 가장 쾌적할까. 대학로의 대표적인 뮤지컬 소극장들을 찾아 체험해 보았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예술마당

‘오!당신이…’의 관람석은 경사도가 매우 큰 스탠드 형식이다. 이런 객석은 무대를 내려다보는 효과를 낸다. 협소한 무대를 더 작아 보이게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앞사람 머리에 가려 작품 감상을 망칠 걱정은 없다.

1층에는 작은 분식점이 있다. 떡볶이와 순대 등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평일엔 퇴근 후 바로 공연장을 찾은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다.

공연장은 4층.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편리하겠지만 한번에 많아야 7∼8명만 탈 수 있다. 공연 시작이 임박했다면 계단을 이용하는 게 빠르다.

■‘첫사랑’의 신시뮤지컬 극장

신시뮤지컬극장의 무대는 다른 소극장에 비해 꽤 높다. ‘오!당신이…’의 예술마당이 무대를 내려다보는 형식이라면 이곳은 올려다보는 느낌을 준다. 올려다보는 무대의 장점 중 하나는 무대장치가 실제보다 웅장해 보인다는 것. 객석의 경사가 크진 않아도 무대가 높으니 앞사람 머리에 가려 공연을 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또 하나의 장점은 공연장 입구의 널찍한 공간. 따로 좌석을 마련해놓진 않았지만 대기 장소로는 손색이 없다. 일찍 도착한 관객들을 위한 이벤트 장소를 마련해 사진을 찍거나 기념엽서를 쓰는 등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배려한 점이 눈에 띈다.

■‘헤드윅’의 SH클럽

 ‘헤드윅’은 다른 어떤 뮤지컬보다도 화려하고 음악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런데 시설이 받쳐주질 않는다. 좌석간 간격이 가까운데다 경사도마저 낮아 뒷좌석에 앉으면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침 앞에 펑키파마를 한 덩치 큰 남학생이 앉았기에 공연 내내 꼬불 꼬불한 머리카락을 감상해야 했다.

공연 때마다 좌석이 꽉 차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각지대에까지 관람객을 앉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빈자리로 남겨두는 게 나을 정도로 좋지 않은 좌석도 있으니 말이다. 공연을 제대로 관람하고 싶다면 뒷줄 오른쪽 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좌석 오른쪽 바닥은 푹 꺼져 있고 머리 위로는 아슬아슬하게 계단이 지나간다. 신나게 움직이다 떨어지진 않을지, 급하게 일어서다 머리를 부딪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인켈 아트홀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했다해도 인켈 아트홀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안심이다. 널찍한 로비에 좌석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한쪽 벽엔 스타들의 사진이 걸려 있고 사인회용 책상도 있다. 이를 둘러보면서 수다를 떨다보면 20분은 후딱 지나간다.

공연이 시작되면 조명이 밝아지면서 무대와 객석 사이 천정에서부터 빗물이 흐른다. 앞줄에 앉은 관객들에겐 이 물이 튈 수 있다(물론 대다수 관객들은 이 빗물을 맞고 싶어한다). 또 극중 동생 동현이 벗어던진 양말이 날아드는 자리, 형 동욱이 다가와 머리를 만지는 자리도 따로 있다. 알고 예매하면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좌석간 간격이나 경사도는 큰 불편없이 공연을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밑바닥에서’의 열린극장

열린극장앞 골목길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서성대고 있다. 다리가 아픈지 바닥에 쪼그려 앉은 이들도 눈에 띈다. 일찍 도착한 관객들이 기다릴만한 장소가 없는 탓이다.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공연장이다.
열린극장의 가장 큰 장점은 앞뒤 좌석 간격이 매우 넉넉하다는 것. 소극장 좌석은 앞사람 등받이에 무릎이 닿을 정도로 간격이 빡빡하기 마련인데 이곳은 휑하다 싶을 정도로 넓다. 뮤지컬 컴퍼니 오픈런의 여미경씨는 “공간이 비좁아 다리가 아프다는 관객들의 불만이 있어 좌석을 일부러 널찍하게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소극장 공연을 보다보면 으레 찾아오는 찌뿌드드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