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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시론] 정치 실종,법치의 위기/노동일 경희대 법대 교수

국정원에 ‘이명박TF’가 존재하는가. 정치공작을 위한 별도 팀이 있었다는 이 후보측 주장에 국정원은 펄쩍 뛴다. 부패척결팀은 있었지만 ‘이명박 죽이기’를 위한 조직은 아니라고. 국정원 요원이 이 후보 관련 부동산 정보를 열람한 동기에 대해서도 설명이 다르다. 다음 수순은 요식행위처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검찰이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것도 여러 개의 칼자루를 쥐고 서 있다. 향후 대선 정국의 향방은 검찰의 칼날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후보 친인척의 주민등록초본 불법 유출 사건 수사 결과는 박근혜 후보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캠프 인사의 직접 관여 사실이 드러날 경우 도덕성을 내세우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 후보 처남 김재정씨의 명예훼손 고소건도 검찰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은 사실상 검찰이 승부를 결정했다. 97년에는 김대중 후보의 재산 의혹 수사를 유보함으로써, 2002년에는 이회창 후보의 병역 의혹을 수사함으로써 선거 결과를 좌우했다. 강재섭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이번에도 한나라당은 단두대 위에서 검찰의 칼날을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검찰로 달려가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법치주의의 진전이라고 반길 수 있을까. 이견이 있겠지만 걸핏하면 정치에 검찰을 끌어들이는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의 실종은 물론 법치 확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선 후보에 대한 가혹한 검증은 필수적이다.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제기된 의혹을 성실히 해명할 의무가 있다. 과거의 잘못이라도 ‘대통령이 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답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작’ 또는 ‘사생활 침해’만을 부각시키며 검증을 피한다면 사안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검증이 언론을 비롯한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있다. 노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정치 선진국’(주로 미국이지만)의 경우가 그렇다. 언론은 성역 없는 취재를 통해 의혹을 발굴하고 후보는 언론이 제기한 의문에 대해 정직하게 대응해야 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해명하지 못할 중대한 잘못일 경우 중도 사퇴를 선택하게 된다. 고소 고발의 난무는 우리 사회의 검증 기능, 자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혹은 몸을 사리느라 철저한 검증을 외면하는 언론도 이런 풍토에 일조하고 있다.

검찰의 정치화 또한 반길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검찰 애호’는 검찰을 신뢰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검찰을 도구로 이용, 승리를 쟁취하려는 목적에서다. 검찰 역시 엄정한 법적 판단 대신 정치적 판단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의 결정적 승부처가 되는 민감한 사안일수록 유혹은 크다. 정치검찰이라는 말이 아직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과거 일부 사건에서 정치적 고려를 법적 판단에 우선했던 업보다.

일부지만 지난 두 번의 대선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이 있다. 이들은 편향적인 검찰 수사가 선거결과를 왜곡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검찰의 가장 큰 자산인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은 정치의 실종이 결국 법치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툭 하면 고소 고발을 일삼는 정치는 정치의 왜소화, 사법의 도구화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매년 1500여건에 이르는 헌법소송 사건이 접수될 정도로 권리주장에는 강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할 때는 법과 질서를 쉽게 외면하는 그릇된 사회 풍조도 법을 도구로만 인식하는 정치 탓으로 볼 수 있다. 정치는 정치의 영역을, 법은 법의 영역을 회복해야 한다. 정치는 이를 바르게(正)할 때 국민이 따르고 법은 이를 엄격하게(嚴)할 때 국민이 지키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