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주요국 환율이 요동을 치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난달 18일 정책금리를 예상보다 큰 폭인 0.5%포인트 인하하면서 달러화의 글로벌 약세가 시작됐다.
돈의 값인 금리가 낮아지면 그 돈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을 뿐아니라 일본 엔화와 캐나다 달러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화 환율도 달러당 910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달러화 약세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 현상을 수습하겠다고 내놓은 금리 인하 카드가 주요국의 환율 불안이라는 불똥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달러화 약세는 수입물가의 상승을 통해 국내물가 상승 압력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다. 반면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무역수지 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기회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달러화 약세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금리 인하가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의 수습에 더해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고 성장률도 부추기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달러화의 약세로 자국 통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들이다. 예를 들어 유로지역의 경우 유로화의 강세는 수출 증가율 둔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요즘처럼 성장률이 주춤할 때는 수출이라도 버텨줘야 하는데 거꾸로 수출이 부진하게 되면 기업들의 수익이 떨어지고 그에 따라 투자와 고용도 줄어들면서 성장률은 더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유로화의 강세를 막는 동시에 주춤거리는 성장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금리를 올려야 하는 요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의 후폭풍이 유럽에 더 거세게 몰아치면서 ECB는 지금까지 2580억유로(330조원)의 유동성을 시중에 풀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실의 여파가 다 가시지 않고 있는 가운데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1%로 1년 만에 처음으로 목표 상한치인 2.0%를 넘어섰다. 따라서 금리를 인상하면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ECB는 지난 4일 정기회의에서 정책금리를 동결했다.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한 신용경색 위기가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금리를 올릴 경우 유로화 강세로 인해 수출이 타격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ECB가 내년 4월 이후에야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미국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유로화가 한 단계 더 강세를 보이거나 또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여파가 다시 불거질 경우 ECB가 금리 인하라는 칼을 빼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상황이 엇비슷한 영국은 물론 자국통화의 강세를 견디지 못하는 캐나다와 호주, 우리나라 등도 금리 인하 대열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경제는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이른바 금리 전쟁 또는 환율 전쟁을 맞이할 수도 있다. 와중에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등 높은 수익을 찾아 전세계를 떠돌던 돈들이 움직이면서 주요국 환율의 변동성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동시에 달러화는 더욱 약세를 보이면서 원유와 곡물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의 급등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의 FRB가 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사태 때처럼 재빨리 사태를 수습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모드로 돌아설 경우 이 같은 시나리오는 없었던 것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8월 비농업부문 고용자 수가 9월 초에 발표됐던 4000명 감소에서 8만9000명 증가로 수정되면서 미국의 추가 금리 가능성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가 예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 향후 예상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위기는 모르는 사이에 찾아오거나 방심하는 사이에 쳐들어오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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