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인생경영(이재규 지음/명진출판)
책읽기는 지루하다. 어느 유명한 시인도 말했다. “두꺼운 책은 지루하다”고 말이다. 가뜩이나 그것도 소설이 아니라 ‘경제경영서’라면 그 지루함의 정도는 더하면 더했지 솔직히 읽기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비즈니스계의 영원한 거장 피터 드러커의 책이 또 한 권 국내에 나왔다. ‘피터 드러커의 인생경영’이 그것이다. 처음엔 그저 그런 번역서인줄 알았다. 읽기가 녹록치 않다는 선입견으로 책을 보다가 지은이의 이름을 보고나서 냉큼 책을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재규 전 대구대학교 총장. 그는 국내 최고의 피터 드러커 전문 번역자로 유명하다.
책을 읽으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因緣)’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저자가 드러커의 이름을 처음 알았던 때는 1966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막 입학했던 시기라고 책은 적고 있다. 실제로 드러커와 첫 만남이 성사됐던 해는 1992년 12월 28일. ‘상봉(相逢)’까지는 강산이 무려 세 번 바뀌는 세월이 지났다. 지독한 짝사랑의 결과다.
‘인(因)’은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연(緣)’은 다르다.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은 ‘타고난 유전자’가 되는 셈이다. ‘드러커’라는 성 자체가 네덜란드어로 인쇄업자를 의미한다고 하니 일찌감치 드러커는 출판과 인을 맺었던 셈이다. 그래서 ‘피는 속이지 못한다’라는 말이 항간에 설득력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책읽기는 ‘경제경영서’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1장인 ‘이야기의 시작’도 재미있지만 더욱 재미있는 것은 2장 ‘빈, 출생과 성장(1909∼1928)’이다. 저자가 고등학교 시절 읽었다는 세계명작 번역문학시리즈 가운데 토마스 만의 ‘부덴부로크 일가’(을유문화사)는 특히 재미있다. 또 ‘부자 명문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밑줄을 꼭 칠만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업 가문은 대체로 4대째에 몰락하고 만다. 푸거 가문이나 메디치 가문을 보자. 1대는 창업을 하고 2대는 상속재산을 바탕으로 가업을 더욱 확장하며, 3대째는 부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하거나 귀족이 되어 예술을 즐긴다. 하지만 4대는 없는 것이 없으므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3대까지는 “이룬 성취”이지만 4대는 “받은 성취”이며, 4대는 조상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다거나 그것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부담감과 책임감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멸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속담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86쪽)’라고 저자는 지루한 책읽기에 맛깔난 양념을 치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다.
3장은 ‘독일에서 영국으로(1929∼1936)’이다. 이때에 투자은행의 증권분석가로 드러커는 변신한다(95쪽). 가장 좋았던 책읽기는 ‘런던, 우연과 필연 그리고 숙명(113쪽)’이다. 한 편의 로맨스 영화를 보는 듯하다. 24세의 청년(드러커)과 21세의 처녀(도리스)가 운명적으로 ‘런던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멋지다. 엉뚱한 상상 하나 더. ‘뷰티플 마인드’라는 영화에서 ‘존 내쉬’가 모델로 나왔던 것처럼 언젠가는 한국영화에서 ‘드러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제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4장은 ‘미국, 새 삶의 시작(1937∼1970)’이다. ‘절망을 본 츠바이크와 희망을 본 드러커(162쪽)’와 만나면 세상을 살만한 것인지 따져보기 보다 세상이 살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걸 긍정적으로 깨닫게 만든다.
5장은 ‘경영학을 꽃 피우다(1971∼2005)’로 드러커 생애의 최고 전성기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내부 자료에 너무나 홀려 있는 바람에 외부를 볼 시간도 마음도 없다. 컴퓨터는 내부 자료밖에 제공할 수 없을뿐더러, 결과는 항상 외부로 드러나는 것인데 말이다”라는 명언(225쪽)은 이 땅에 수많은 중소기업 사장들이 좌우명으로 메모할만하다.
/심상훈 작은가게연구소장ylmfa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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