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 돈 벌려고 가는 겁니까. 국위 선양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 제작사 대표가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일본 공연을 두고 한 이야기다. 지난해 9월 오디 뮤지컬 신춘수 대표는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아오야마 극장에서 ‘맨오브라만차’를 일주일간 공연했다. 2006년 ‘지킬 앤 하이드’에 이어 두번째다.
“그 말이 맞아요. 계산상으로는 마이너스죠. 각오하고 한거에요. 시장을 뚫는데 수업료를 낸 셈이죠.”
신 대표는 일본 진출에서 돈을 잃고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일본 관객이 생각보다 무척 배타적이란 점과 우리나라 특유의 ‘스타 파워’가 먹힌다는 점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투어팀에 대한 반응이 의외로 시큰둥하더군요. 그런데 특정 스타에 열광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턴 에너지가 폭발합니다. 특히 배우 조승우의 인기가 뜨거웠어요. 일본 뮤지컬 시장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주목할만한 스타가 없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는 올해도 ‘지킬앤 하이드’를 일본 무대에 올린다. 단 이번엔 ‘수익을 낸다’는 조건을 달었다. 상업 예술은 제 앞가림을 할 정도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해 직접 연출에 나선 것도 혹독한 경험이었다. 제작자로만 활동하다 처음으로 뮤지컬 ‘스펠링비’의 지휘봉을 잡은 것. 솔직히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요즘 병원에 다닐 정도에요. 제작에만 전념할 땐 뭐든지 자신있고 낙천적이었는데 신경질적으로 바뀌더라구요.”
열번 생각하느니 한번 실행하고 후회하는 편을 택한다는 그다. 그런데 ‘스펠링비’를 연출하면서부터는 성격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완벽주의를 고집하게 되더라구요. 눈에 뻔히 보이는데 안고쳐지니까 화도 나고…. 또 연출할 생각이 있냐구요? 제작자 일을 그만둔다면 모를까. 병행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마흔 초반인 그는 나이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한 제작자로 꼽힌다. 남들처럼 대학로에 포스터를 붙이는 일부터 시작한 것도 아니다.
사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건 뮤지컬이나 연극이 아니라 영화다. 대학 시절부터 작은 프로덕션에서 편집, 노래 가사 붙이는 일부터 광고 카피 만드는 것까지 다 해봤다.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과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당시 한 팀이 돼 일했다.
“전 그때 제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배우지도 않았는데 뭐든지 척척 해냈거든요. 게다가 뮤지컬 산업이 살아날 때쯤 지금의 회사를 만들며 안착했죠. 운도 좋았고 시기도 적절했어요.”
올해는 배우 황정민 주연의 뮤지컬 ‘나인’, 오드리헵번 주연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마이페어레이디’, 브로드웨이 코미디 뮤지컬 ‘나쁜 녀석들’ 등 총 세편의 라이선스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왜 순수 창작물을 만들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그에게 라이선스 뮤지컬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가진 선진국에서 만든 작품이에요. 거기에 담긴 관록과 연출 기법, 뮤지컬 문법을 복제하면서라도 나아지는 게 있다면 하나라도 더 배워야죠.”
그의 최종 목표는 미국이나 영국 프로덕션을 설립해 영어로 뮤지컬을 만드는 거다.
“한국어 공연은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외국에 나가서 그들의 코드에 맞춰 작품을 만들어야죠. 현지에서 인정받은 공연을 한국에 들여오는게 전략입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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