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중국의 현대미술은 인물 위주의 독특한 감성을 표현한 작가(인준, 위민준, 왕광이)의 작품이 대세를 이루었다. 단색과 붉은색의 2가지 색깔로 ‘이’를 드러내고 웃는 얼굴을 과장되게 그림으로써 사회주의 중국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는 14일부터 4월16일까지 한남동 표 갤러리에서 열리는 중국의 중진작가 왕커쥐 개인전은 기존의 전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격동적인 붓질과 감수성, 그리고 중국 현대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채도의 색감으로 빚어낸 풍경화 30여점이 선보인다. 경매시장에서 인기절정을 달리는 한국의 원로화가 김종학(71)과 비교되는 작가다.
왕커쥐가 중국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만하다. 우선 지난해에는 일반 갤러리가 아닌 중국국립미술관을 비롯해 상하이미술관과 칭타오미술관을 돌며 순회전시를 가졌고, 제2회 청년작가 국가미술전람회 수상(1984), 중국유화전람회 1등상(1989), 제2회 베이징 국제비엔날레와 국가미술전람회(1999)에 참가했다. 현재는 중국 인민대학교 유화과 학장으로서 작품활동과 함께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중국의 목가적인 풍경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왕커쥐는 그림을 그리는 현장을 대단히 중시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풍경화가들은 바깥에서 에스키스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와 작품을 스튜디오에서 완성시킨다. 그러나 왕커쥐는 100호·200호 크기의 대작일지라도 스케치에서부터 붓질을 마칠 때까지 오로지 현장에서 작품을 완성한다. 몸으로 날씨의 이모저모를 느끼며 자연 현장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탓에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고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왕커쥐의 풍경화는 실경(實景)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이번 전시는 우이산(武夷山), 구산(孤山), 라오산, 청성산(靑城山), 연산(燕山), 초록동산, 치자마을, 어촌, 샹호(常湖) 등 중국의 사계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이들 작품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다리나 길이 생략되기도 하고 특정 부분이 크게 확대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사물을 심하게 왜곡시켜 어떤 형체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며, 전체적으로 흙냄새가 풀풀 나는 시골의 정취를 옮겨내는 그림의 골간을 유지하고 있다.
작가는 “그림에서 시각적 형식의 요소들을 연구하고 형태와 색, 선들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들 간의 관계를 탐구하여 미술언어에 어떤 전기를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화면에 플롯과 생각을 부여하면서 붓질과 색깔로 정서를 직접 전달한다. 그것들은 미술언어의 가변성을 넓히고 강화시키는 구실을 하며 동시에 형식적 요소들의 힘을 표출한다”고 말한다.
이런 왕커쥐의 작품들은 향토적이고 농촌적이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미술평론가 서성록씨는 “왕커쥐는 발랄한 색감, 리드미컬한 붓질, 섬세한 조형감각 등 어느 구석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면서 “계절 감각이 뚜렷한 것도 그의 그림이 지닌 특색 중 하나다. 여름의 옥수수와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시골, 늦가을의 초목, 봄을 맞이한 북방풍경 등은 중국의 사계절을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편 이번 전시가 열리는 동안 중국의 컬렉터와 화랑 관계자 20여명이 특별 방한해 왕커쥐의 풍경화를 감상할 예정이다. (02)543-7337
/noja@fnnews.com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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