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선 매일 6t의 물이 흐른다.
3t은 천장에서, 3t은 바닥에서. 그야말로 줄줄 흐른다. 천장에서 내리는 물줄기는 배우들을 흠뻑 적시고 바닥을 흐르는 물줄기 사이엔 아기자기한 징검다리가 놓인다.
소박한 사랑 이야기답지 않은 장관을 뽐낼 뮤지컬 ‘소나기’의 한 장면이다. 황순원의 유명 소설 ‘소나기’를 각색한 이 작품은 인기가수 빅뱅의 멤버 승리가 주연을 맡은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매 공연마다 엄청난 양의 물을 끌어오기 위해 고군분투한 연출자 유희성(서울시 뮤지컬단 단장)은 개막을 앞두고 의기양양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다. ‘앞으로 관객의 평가를 들어봐야 알겠지만…’이란 머릿말을 살짝 달고서 말이다.
■배우부터 서울시뮤지컬 단장까지
지금은 서울시 뮤지컬단을 이끌며 행정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는 사실 배우다. 20여년간 무대에 섰고 연출자로도 이 이름을 알렸다.
연극과 연을 맺게 한 것은 교회다. 모태신앙이었던 그에게 선교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다소 엉뚱하다 싶은 그의 장래 희망도 여기서 출발한다.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 된 다음에 내 팬들을 모두 교회에 다니도록 해야지’
고등학생 때인 1978년 전국 학생연극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고향인 광주에서 시립극단원으로 활동하다 서울예술단 뮤지컬 연기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원래의 꿈은 모습을 바꿨고 교회에 나가는 일도 뜸하게 됐다.
지금의 자리를 탐낸 건 아니지만 막상 서너명이 경합을 벌이는 선발전 막판에 이르자 ‘염치없는 욕심이 생겼다’고 털어놓는다. 배우와 연출자의 인생을 두루 살았기에 잘 할 수 있단 확신도 강했다.
그는 2년 임기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올해 연임됐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재정이 너무 적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와서는 3배쯤 늘렸지만 여전히 부족하죠. 매년 양질의 창작물을 한편씩 올리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외유내강 지향…연습 땐 호랑이로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보통 두가지를 기억한다.
어른 엄지손가락만큼 짙고 굵은 눈썹, 그리고 누구에게나 온화한 태도. 분명히 그는 보통 이상으로 깍듯하다. ‘항상 그렇게 친절하시냐’는 질문이 어리석게 들리지만 유단장은 종종 듣는 이야기다.
“그냥 그런 척을 하는거에요.(웃음) 일할 땐 정말 독하게 변하거든요. 배우나 스태프들에겐 강한 면도 많이 보이는데 무대 밖에서 만나는 분들한테까지 카리스마를 과시할 필요가 있나요.”
하지만 그 ‘예의바름’은 후배 연기자들을 바라볼 때도 중요한 잣대다.
“저는 ‘끼’와 ‘됨됨이’를 봅니다. 이 둘만 있으면 훌륭한 배우로 키워낼 수 있거든요. 제가 뮤지컬 ‘명성황후’ 고종역일때 대역 배우였던 조승우가 꼭 그랬어요.”
그는 뮤지컬이란 서구 장르 예술에 한국적 색채를 입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복을 입고 타령조의 노래를 하라는 게 아니다. 한국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작품 ‘소나기’에 그림자극을 도입했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 지저귀며 날아가는 모습을 모두 그림자로 표현합니다.
‘굉장하다’고 느끼는 관객분들도 계실 것이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런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우리만의 특색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소나기’로 동북아에 진출한 뒤 유럽 무대에도 설 계획이다.
“지금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작업이 한창입니다. 소박한 사랑이야기 ‘소나기’가 일본인과 중국인의 마음을 어떻게 매혹시키는지 한번 지켜보세요. 자신있습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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