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심야에 즐기는 공포연극 ‘로즈마리’

밤 10시.

극장과 관객들이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이다. 하지만 연극 ‘로즈마리’의 문은 이 때 열린다.

이건 정말 좋은 기회다. 떳떳하게 제 시간에 퇴근해 맛깔난 음식으로 배를 채워도 시간이 남기 때문이다. 평일 연극 관람이 언감생심인 직장인들에게 ‘심야연극’이란 타이틀은 낯설면서도 반갑다.

지난 9일부터 서울 대학로 미라클 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대학로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연극 ‘미라클’로 유명한 제작사 파마프로덕션의 솜씨다. 파마프로덕션은 전작 ‘해피투게더’와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방법’의 무대세트를 그대로 이용해 ‘로즈마리’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때문에 몇몇 관객은 입장하는 순간 ‘어? 예전에 봤던 작품이랑 무대가 똑같네?’란 말을 내뱉는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행복빌라 203호. 어설픈 2인조 도둑이 해프닝을 벌였던 곳(해피투게더)이자 청춘 남녀가 쓰라린 이별을 경험했던 곳(여자친구와 헤어지는 방법)이 이젠 소름끼치는 공포의 현장으로 돌변한다.

낯선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앉아야 하는 소극장 객석의 형편이 이처럼 고마운 적이 있었나. 작품을 보는 내내 음산함이 온몸을 휘감아 타인의 온기가 그리울 정도다.

시작은 밝다. 어딘가 모르게 고독해뵈는 형사 준하와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마리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수년째 동거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준하는 상사의 명을 받고 지방에 출장을 가게 된다.

혼자 남겨진 마리는 잠결에 인기척을 느낀다. 한줄기 빛도 없는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불청객. 마리는 끔찍하게 죽음을 맞고 집에 돌아온 준하는 연인의 죽음에 미쳐 날뛴다.

게임은 지금부터다. 준하는 마리를 살해한 범인과 대면하게 되고 이때부터 이야기는 준하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꿈을 꾼 것인지 정신착란을 일으킨 것인지 해석은 분분하다.

웃음으로 시작된 극은 눈물로 맺는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김태린은 ‘미라클’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방법’에서와 마찬가지로 죽음이 갈라놓은 연인간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다. 신파를 덜어내고 독특함을 가미했다는 것이 전작들과의 차이다.

체면을 벗어던지고 비명을 지르고나니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으스스함 탓에 온 몸을 웅크리고 공연을 본지라 뼈 마디가 쑤시지만 이 뻐근함이 싫지만은 않다.

작품은 8월 31일까지 공연된다. 길고 무더운 여름밤을 책임지겠다는 뜻인가보다.

/wild@fnnews.com박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