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시를 향해 던질 수 있는 가장 큰 물음은 과연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다. 웅장한 규모를 뽐내는 건축물일까, 아니면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일까.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자연 상태의 인간에게는 그다지 친화적이지 않은 것들이다. 기계의 힘과 속도에 맞춰 건설된 현대도시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도시에는 문화적 경제적 신체적 차이를 지닌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공공디자인은 이들 모두가 접근하기 쉽고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사물과 공간을 조정하는 일이며 장애가 없는 도시를 구현하는 일이다. 모든 공공디자인은 불특정의 모든 시민의 행태와 상황에 맞춰 검토, 설계돼야 한다.(권영걸 서울시 디자인서울 총괄본부장)
■‘디자인 코리아’ 디자인이 없다?
새 정부가 ‘디자인 코리아’ 정책을 발표한 뒤 전국이 디자인 열풍에 휩싸이고 있다. 서울시는 ‘세계디자인수도’ 대회와 디자인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국제적인 디자인도시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다른 지자체들도 각종 캠페인성 디자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디자인정책을 뜯어보면 대부분이 간판정비, 가로시설물 교체 등 아주 지엽적인 곳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광역적이고 근본적인 도시디자인 계획은 찾아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공공디자인이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공적 영역에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도시의 문화를 심도있게 담아내야 할 대중의 공간(Public Spaces)에 몇몇 지자체에서 요란하게 추진 중인 공공디자인 사업이 단순히 도시외관을 바꾸고 비용을 들이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자체별로 잇달아 조례를 만들고 디자인 관련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반짝행정’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공공간 디자인 개발은 기존 도시 내 친환경놀이터를 조성하는 정도의 소규모에서부터 신도시개발의 전체적인 디자인 컨셉트 수립 같은 대단위 디자인까지 다양하다.
실제로 건축물이나 도시기반시설, 가로시설물, 각종 상징물 등 공적영역에 대한 디자인은 이미 해외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시행돼 시민의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공용 공간의 대부분이 공공디자인으로 탈바꿈해 쾌적하고 편리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영국 런던은 전통적인 거리 특성에 어울리는 가로시설물을 디자인한 곳으로 유명하다. 거리시설물들은 초콜릿색으로 하고 공중전화부스나 버스는 이와 대조되게 빨간색으로 통일시켜 ‘런던’하면 이런 독창적인 모습을 떠 올리게 한다.
■도시정체성과 경쟁력 제고에 초점 둬야
지금까지 우리나라 도시는 어느 곳에 가나 획일적이다. 하지만 이제는 각 도시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거리시설물을 만들어 낼 때가 됐다. 공공시설도 이제는 기능과 이용자의 편의 외에도 주변환경과의 조화를 통해 도시 정체성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실내디자인학회 한 관계자는 “거리시설물들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거리환경 전체를 통합적으로 보는 디자인개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가로시설물의 경우 설치 및 관리주체가 대부분 공공기관이고 설치되는 위치가 보도여서 설치 및 관리에 대한 매뉴얼과 시스템만 잘 정비해도 가로경관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공디자인은 가로시설물을 정비하고 간판 등 사인물을 교체하는 가로 환경 개선사업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공공디자인 관련 실무자는 “마치 가로의 간판을 정비하고 시의 상징을 부여한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이 공공디자인의 전부인 것처럼 해석해서는 안된다”며 “모든 시민이 공유하는 공공공간은 공공디자인을 통해 쾌적하고 아름답고 안전하면서도 실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 정책 연구·교육프로램 마련시급
공공디자인은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성, 안전성, 편리성 부분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디자인 기획 능력은 단기간에 길러지지 않으며 하물며 국가 전체 전 분야에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공공디자인 향상을 위해 정부 정책과 관련기관의 실행력, 국민의 디자인마인드가 뒷받침되고 이에 대한 투자가 병행될 때 비로소 디자인코리아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책적 개념이 부재한 상태에서 도시 전체의 밑그림 없이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공공디자인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또 민간이 추진하는 공공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는 지자체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지원사업은 지역재단 등에서 신규지원사업을 유치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008 문화도시 국제콘퍼런스’에서 ‘창조도시’ 연구의 거장인 사사키 마사유키 오사카 시립대 교수의 말은 디자인 코리아의 첫발을 내딛고 있는 도시의 관계자들이 새길 만하다. “디자인 창의적 정책이 정부에만 국한된다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예술이란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미래를 위해 창의성이 풍부한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것이다. 디자인·문화정책을 산업정책, 도시계획, 환경정책과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재계지도자와 비영리단체 등 공공과 민간, 시민사회간 협력으로 도시에서 창조활동지원이 가능한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
”
/hyun@fnnews.com박현주기자
■사진설명=영국 런던의 '30세인트 메리 르 액스 빌딩'은 런던을 대표하는 빌딩이다. 시민들에게 '야한 오이지'로 회자되는 대영박물관 등을 제치고 런던을 상징하는 현대 건축물 1위로 선정됐다. 런던의 이미지와 도시환경 대변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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