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곽인찬의 팬텀오브더뮤지컬] 시카고

▲ 시카고의 주연배우 옥주현(왼쪽)과 남경주.
춤, 춤이다. 좀 과장하면 뮤지컬은 춤이 쥐락펴락한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창작 뮤지컬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자주 듣는 것은 특히 춤이 빈약하기 때문이고, 세계적인 작품들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특히 춤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춤으로 시작해서 춤으로 끝난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춤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연상시킨다. 마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처럼 일사불란하게 펼쳐보이는 군무는 간혹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뮤지컬을 보기 전에 영화 ‘시카고’를 보고 갔는데, 둘의 차이를 확실히 알았다. 그건 바로 춤이다. 영화가 아무리 뛰어나도 뮤지컬 무대의 생동감 넘치는 춤을 흉내낼 순 없다.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린 ‘시카고’는 우리 배우들이 출연하는 이른바 라이선스 공연이다. 브로드웨이 초연(1975년) 이후 33년의 전통을 쌓은 원작 ‘시카고’의 명성에 걸맞은 수준 높은 공연이다. 특히 록시 하트 역으로 출연한 옥주현은 칭찬을 아낄 이유가 없다.

돈만 아는 소송무패 변호사 빌리(남경주)와 콤비를 이룬 복화술은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록시의 인생 독백 때는 옥주현 혼자 서 있는데도 그 넓은 무대가 꽉찬 느낌이다. 불과 몇 년 새 노래와 춤, 연기 능력을 골고루 갖춘 뮤지컬 배우로 거듭난 그녀의 변신이 놀랍다.

록시의 순진한 남편 에이모스 역으로 나온 황만익은 조연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에이모스는 ‘시카고’를 통틀어 유일하게 착한 인물이다. 남들이 하나같이 돈과 인기를 쫓아 불나방처럼 날아다닐 때 에이모스는 발을 땅에 딛고 걸어다닌다. 그가 “나도 퇴장음악을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음악감독 겸 지휘자 박칼린은 짐짓 무시했지만 객석에선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관록의 최정원(벨마)과 남경주는 뮤지컬을 즐기고 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다르다. 최정원은 오프닝에 해당하는 ‘올 댓 재즈’(All That Jazz)에서 객석을 휘어잡는다. 그 파워에 압도당한 관객들은 속으로 탄성을 지른다. 남경주는 엄숙한 재판을 난장판 서커스로 만드는 능구렁이 속물 변호사로 아주 딱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1막에 비해 2막이 힘이 달리는 느낌을 준 건 아쉽다. 마지막 벨마와 록시의 듀엣 공연도 앙상블과 함께 좀 더 힘있게 끝을 맺었으면 어떨까 싶다.

여죄수 여섯명이 감방 안에서 각자 살인을 고백하는 ‘셀 블록 탱고’(Cell Block Tango)에선 쇠창살이 없으니 어쩐지 허전하다.

사실 ‘시카고’는 살인과 탐욕, 부패, 불륜이 판을 치는 1920년대 시카고, 나아가 미국 사회를 고발하는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방귀 뀌면서 남 걱정 안 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두 시간 반 동안 웃고 즐기다 보면 작품의 사회성은 따질 겨를조차 없으리라.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