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네덜란드, 아일랜드는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무엇보다 잘 산다. 지난해 기준으로 영국과 네덜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4만6000달러 대로 비슷하고 아일랜드는 6만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세 나라가 지금까지 오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때 잘 나가던 일류 국가들이었지만 1970∼1980년 대에는 국제사회로부터 병자 취급을 받았다. 영국은 ‘영국병(English disease)’,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 아일랜드는 ‘서유럽의 병자(Sick man of Western Europe)’였다. 일류에서 이류로 떨어진 배경도 비슷하다. 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 재건에 이은 장기 호황을 누리면서 정치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자만감에 빠져 들었다. 이에 따라 과도한 복지와 과격한 노조 활동 등이 이어지면서 경제 전체가 동맥경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고비용·저효율이 계속되면서 성장률은 떨어지고 실업자가 양산됐다.
또 한 가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점은 이들 세 나라가 1980년을 전후해 대대적인 개혁에 성공하면서 다시 한번 일류 국가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여년에 걸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노조문제를 정면돌파(영국)하거나 ‘노사정 대화합(아일랜드와 네덜란드)’으로 해결하는 등 고통스러운 개혁과 구조조정을 거쳤다. 그 결과 병든 사회와 경제를 건강한 글로벌 경제로 돌려놓으면서 세계적인 자국기업을 키워내는 것은 물론 수많은 해외 기업과 금융기관을 국내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개혁과 구조조정이 글로벌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는 점이다. 경직된 노사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기업 활동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함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냈다. 이들 나라에서는 기업의 국적에 관심이 없다. 자국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자기 나라에서 생산과 고용을 창출한다면 고마운 기업일 뿐이다.
이들 세 나라 외에도 유럽의 강소국이라 불리는 벨기에, 스위스,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도 대부분 글로벌화를 통해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경우 현재의 노인층들은 대부분 영어를 전혀 모르는 반면에 청소년층은 물론 중장년층들도 자유스럽게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고등학교에 다닐 정도면 영어를 구사하는 데 거의 문제가 없다. 여차하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이나 호주까지도 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 압축성장에 성공한 데 이어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정보(IT)화’에 앞서면서 1인당 소득 2만달러를 달성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도 ‘글로벌화’에 달려 있다. 최근 우리 경제의 덩치는 세계 12∼13위로 올라왔지만 글로벌화 수준은 30위권(2007년 AT커니 글로벌화지수)에 머물고 있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지만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은 51위에 불과하다. 런던(1위), 뉴욕(2위), 홍콩(3위), 싱가포르(4위), 취리히(5위)는 물론 도쿄(9위), 상하이(31위), 베이징(46위) 등도 서울보다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산업화와 IT화는 ‘후발자 이익(late-comer advantage)’을 누릴 여지가 많아 잘만 하면 우리가 했던 것처럼 압축성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글로벌화의 경우 뒤로 처질수록 따라가기가 더 어려워진다. 글로벌화는 ‘선발자 이익(first-mover advantage)’이 워낙 크기 때문에 늦으면 늦을수록 더 따라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존 나이스빗과 만나 “한국이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구동성으로 돌아온 대답은 ‘열린 마음’이었다. 한국도 이제 값싸고 좋은 물건을 잘 만들어내는 제조업과 IT와 같은 하드웨어를 뛰어넘어 열린 마음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한국의 미래는 열린 마음으로 세계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해 뛰는 한국인들에게 달려 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