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로 브로드웨이가 흔들리고 있다. 타임스퀘어의 크고 작은 광고 간판들은 여전히 강렬한 네온사인 불빛을 내뿜고 있지만 바로 옆 브로드웨이 극장가에는 ‘Sold Out(매진)’을 알리는 전광판이 꺼진지 이미 오래다.
매년 10월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시즌 좌석 예매를 위한 관객들의 빗발치는 문의전화로 브로드웨이가 가장 바빠지는 시기. 그러나 올해 10월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연일 각종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금융위기의 파장이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에선 이번 달에만 벌써 5편의 대작 뮤지컬이 막을 내렸거나 종연(終演)을 선언했다. 이 중 3편은 ‘뮤지컬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던 작품들. 지난 2003년 수상작인 ‘헤어스프레이’가 내년 1월 4일 종연을 선언했고, 이어 2005년 수상작 ‘스팸어랏’과 2007년 수상작 ‘스프링 어웨이크닝(사춘기)’도 내년 1월 18일 막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특히 ‘헤어스프레이’와 ‘스팸어랏’은 막대한 수입을 올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던 작품이어서 더욱 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무려 8개의 트로피를 거머줬던 ‘스프링 어웨이크닝’도 갑작스런 종연 발표에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프로듀서들은 “현재 우리는 60% 안팎의 관객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공연 수입도 지난해의 50% 수준을 밑돌고 있어 종연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올리비아 뉴튼 존 주연의 댄스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재너두’가 이달 초 이미 막을 내린데 이어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를 원작으로 한 ‘리걸리 블론드(금발이 너무해)’도 지난 19일 브로드웨이를 떠났다.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은 현재 공연되고 있는 ‘13’을 비롯해 ‘두 도시 이야기’ ‘보잉보잉’ ‘39계단’도 불안정한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다. ‘집시’의 투자자들 또한 중견 여배우 패티 루폰에 온갖 희망을 걸고 있지만 이들 역시 내년 1월이 고비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브로드웨이 극장주들은 내년 1월 얼마나 많은 극장들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게 될지 씁쓸한 추측을 하고 있다. 매년 1∼2월이 전통적인 비수기인 데다 관객들의 문화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이미 많은 작품들이 현재도 적자를 감수하면서 공연을 강행하고 있는 상태다. 오는 12월 오픈 예정이었던 3∼4개 작품도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갑작스럽게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전미극장주제작자연맹(LATP)의 발표에 따르면 10월 셋째주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평균 관객 점유율은 78%. 이는 통상 90%를 웃돌았던 예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기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리걸리 블론드’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우리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기대를 걸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미 이번 10월의 기록은 예년과 전혀 다른 결과를 보였고 올 연말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베테랑 프로듀서인 제임스 프레이드버그도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고가의 티켓 가격으로 인해 뉴욕 현지 관객을 잃어버린 브로드웨이는 그동안 외국인 관광객에 상당부분 의존해 왔다”면서 “그러나 달러 강세로 인해 환율이 불안정해지면서 이들의 발걸음마저도 뜸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뉴욕=gohyohan@gmail.com한효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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