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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은 예뻤다?..발칙한 상상력 ‘미인도’를 다시 그리다



단원 김홍도(1745∼1810), 오원 장승업(1843∼1897) 등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화가로 손꼽히는 혜원 신윤복(1758∼?)에 관한 사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 저속한 그림을 즐겨 그려 도화서(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서 쫓겨났다는 속설이 전해지지만 이마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혜원(蕙園)이라는 호를 가진 그가 여자가 아닐 가능성은 99.9999%로 남자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13일 개봉하는 김민선 주연의 영화 ‘미인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바로 이 대목에서 출발한다. ‘미인도’는 0.0001%의 가능성에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 신윤복을 남장 여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윤복이 최근 문화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8월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한 이정명의 장편소설 ‘바람의 화원’이 첫 출간됐고 지난 9월부터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TV드라마가 SBS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고 있다. 또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2주간 열린 ‘신윤복 특별전’에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 권의 소설과 TV드라마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이상 열풍이다.

영화 ‘미인도’는 이른바 ‘신윤복 신드롬’이 서점과 TV브라운관, 미술관에 이어 스크린으로 번지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민선이 남자로 살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운명의 여인 신윤복으로 등장하는 ‘미인도’는 한발짝 더 나아가 신윤복 스토리를 욕망과 집착이 뒤얽힌 ‘19금(禁)’ 버전의 남녀상열지사로 만들어내 그렇지 않아도 뜨겁게 불붙고 있는 역사왜곡 논란에 기름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미인도’는 소설이나 TV드라마에 비하면 이야기가 조금 더 복잡하다.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과 김홍도를 스승과 제자로 그리면서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동성애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머물고 있지만 ‘미인도’에는 천민 출신의 첫사랑 강무와 신윤복을 질투하는 조선 최고의 기녀 설화가 등장하면서 사건이 복잡미묘하게 꼬여간다. 영화제작진이 치명적인 유혹, 금기, 에로티시즘, 센세이션 같은 단어에 방점을 찍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는 ‘단오풍정’ ‘월야밀회’ ‘월하정인’ ‘이부탐춘’ ‘미인도’ 등 신윤복이 남긴 그림과 춘화(春畵) 등이 그려지는 과정을 보여줘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첫사랑 강무와 함께 기녀들의 목욕 장면을 훔쳐 본 뒤 그린 ‘단오풍정’이나 기방을 탐방한 후 그려나가는 ‘월야밀회’ ‘이부탐춘’ 등은 100%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허구이지만 신윤복의 그림을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드러나는 엇갈린 사랑의 운명과 신윤복에 집착하는 김홍도의 마음을 헤아리긴 쉽지 않다. 남장 여인인 신윤복에게 여성성을 확인시켜주는 강무와의 첫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아 서는 김홍도의 염정(艶情)은 너무나 거칠고 느닷없어 관객을 당혹케 한다. 신윤복의 스승이자 그를 사랑하는 남자 김홍도 역은 ‘밤과 낮’의 김영호가, 신윤복의 첫사랑 강무 역은 ‘내 청춘에게 고함’ 등에 출연했던 김남길이 각각 맡았다. 18세 이상 관람가. 13일 개봉.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