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조 도예전
현대 도예의 ‘전업작가 1호’인 급월당(汲月堂) 윤광조(62)는 지난 95년 세간의 유명세를 뒤로 하고 서울에서 1000리나 떨어진 경북 경주의 도덕산 산속 바람골로 거처를 옮겼다. 유명세를 타면 탈수록 세간에 나와 활보하려는 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인데 그는 오히려 거꾸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찾아들어간 것이다.
그는 이곳 바람골에서 달과 벗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작업에 대한 구상이 떠오르면 자연과 가장 가까운 흙과 불과 물로 분청을 빚어내고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청회색의 사기인 분청을 통해 그는 감각적인 이 세상(此岸)과 정신적인 저 세상(彼岸) 사이를 상쾌하고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윤광조는 그 자유로움에 도취되었고 분청만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표현력에 매료되었다.
그의 작품은 흙으로 빚는데 너무나 많은 공력이 든다.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이유다. 물레를 던져 버리고 코일처럼 길게 뽑은 흙을 쌓아올리는 타래 쌓기로 도자를 빚거나 밟고 두드려 만든 흙판을 삼각 기둥 형태로 붙이고 다듬어 가마에 굽는 작업을 지금도 조수 없이 혼자서 한다. 연간 50점가량 구워내지만 실제 건질 수 있는 작품은 12점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경암학술상을 수상한 윤광조의 도예전이 9일부터 오는 2009년 1월 3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열린다. 상업화랑에서는 지난 99년 가나아트 전시 이후 9년 만에 열리는 전시회다. 그는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 전시회(2004년)를 비롯해 영국의 도예전문 갤러리인 베송갤러리(2003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2003년), 영국 버밍엄미술관(2004년), 미국 시애틀미술관(2005년) 등 굵직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기별로 변신해온 작품 35점이 선보인다. 원기둥이나 삼각기둥의 형태 위에 구름·폭풍·강·비·바람을 드로잉했거나 자연을 스승으로 여긴 산속 삶이 드러난 ‘산중일기’와 못을 이용해 도자 몸체에 반야심경을 새겨놓은 ‘심경’이 전시된다.
윤광조는 “도예 작품은 아이디어나 지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와 고독과 열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정체성·보편성·조형성은 작품을 받치는 세 개의 다리로서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작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작고 단순한 것에 더 큰 공을 들여왔다. 크면 공간을 채우려는 본능이 발동해 장식화되기 마련이어서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윤광조는 40여년 동안 산에서 살다보니 산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고 그 또한 산에 대고 할 이야기가 있단다. 그게 ‘산중일기’라는 작품으로 계절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산의 모습을 작품으로 옮겨놓았다.
미국의 평론가 에드워드 J 소잔스키는 “현대 도예는 과도한 장식과 복잡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도예가 윤광조의 기품 있고 차분한 자연 그대로의 그릇은 관람객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평했다.
전통 분청에서 출발해 물레라는 틀을 버리고 모든 기술로부터 자유로워진 ‘정(定)’ ‘관(觀)’과 자연의 도를 추구했던 세월을 거쳐 최근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작업하는 도예가 윤광조. 반야심경 270자를 도예 몸체에 새기는 작업은 단순히 흙으로 도예를 빚는 차원을 넘어 수행의 과정이었다.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스스로 존재하는(自然) 윤광조의 작품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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