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느라 바빠 은미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게 한이 됩니다.”
2004년 6월 22일 딸 유은미씨(38)와 헤어진 어머니 강막달씨(69)의 말에는 짙은 한숨이 배어 있다. 공사판에서 식당일을 하던 강씨 내외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그 탓에 1남 3녀의 막내였던 유씨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34세이던 딸은 낮 12시쯤 집을 나섰다. 칠부 바지, 반팔티 차림에 자주색 가방을 들고서다. 장성한 딸의 외출이라 특별할 게 없었다. ‘곧 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사나흘이 지나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경찰에 신고를 한 뒤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그때는 인천 부평구 청천 2동에 살았어요. 동네부터 샅샅이 뒤졌죠.”
그로부터 한달 뒤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딸의 주민등록증을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 가란 이야기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가 지갑을 훔친 걸까. 사고라도 당했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주민등록증은 서울 영등포에서 습득됐다고 했다. 그 길로 영등포에서도 전단지를 돌렸다. TV에도 출연해 공개적으로 딸을 찾아나섰지만 소득은 없었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답답한 마음에 점까지 봤다.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점쟁이의 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지적장애 2급’이라는 의사의 판단과는 별도로 강씨는 유씨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것은 물론 대학생활과 직장생활까지 했는데 제 집을 찾아오는 데엔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유씨는 한때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대학 진학 후 같은 과 조교수를 짝사랑하다 마음의 병을 얻었다. 결국 서울 청량리와 중곡동에 있는 정신병원을 몇 차례나 들락날락했다. 어머니 강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들 병원까지 뒤졌다. 유씨가 즐겨찾던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도 수차례 들렀다.
“키가 150㎝로 많이 작고 살이 찐 편이었어요. 생머리에 숱이 적고 머리카락이 가늘었죠. 다 자란 딸의 얼굴이 변할리 없으니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쉽지 않네요.”
고집이 좀 세긴했지만 은미씨는 순하고 착한 딸이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신광여고를 졸업한 그는 재수를 해 한양여자대학에 진학했다. 몇 번 직장을 갖긴 했지만 마음의 병이 깊은 탓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다른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동안 병원을 들락거린 막내딸의 처지는 강씨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강씨는 얼마 전 집안 사정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운 주소와 바뀐 전화번호를 유씨에게 알릴 길이 없어 마지막 남은 희망은 휴대폰뿐이다.
“한 시간에도 수십번씩 휴대폰을 들여다봅니다. 나이가 먹으니 몸이 아파 나가서 찾지도 못하고. 휴대폰 번호는 그대로니까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싶어서요.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늘, 아니 내일이라도 은미가 돌아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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