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소의 해를 맞아 소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너무 구태의연하다고요.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소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제법 많습니다.
지난 15일 국내 극장가에는 소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개봉했습니다.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제25회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워낭 소리’입니다. 지난 20년간 독립 프로덕션에서 방송 프로듀서로 일한 이충렬 감독이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워낭 소리’는 한국사람들이 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경북 봉화의 두메산골. 팔순의 최원균 할아버지는 마흔살 쯤 된 늙은 소 한 마리를 데리고 옛날 방식 그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늙은 파트너(영화의 영어 제목이 ‘Old Partner’입니다)의 건강 상태가 썩 좋지 않습니다. 60년을 해로한 할머니는 소 팔아치우고 기계로 농사를 짓자고 성화입니다. “안돼, 못 팔아!” 오랜 세월 손과 발이 되어줬고 그 덕에 아홉 남매를 무사히 키웠으니 할아버지로서는 그 늙은 소를 팔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소는 외양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황급히 달려온 수의사는 할아버지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합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다음 날 할아버지는 소의 코에 걸려 있던 코뚜레와 목에 얹혀 있던 멍에를 풀어줍니다. “이제 좋은 데로 가거라.” 한평생을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늙은 소는 큰 눈을 끔벅이다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맙니다.
소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납니다. 살아 생전 사람들에게 풍성한 노동력을 제공했던 소는 죽어서 자신의 몸을 남깁니다. 꽃등심, 안심, 목심, 아롱사태, 홍두깨살, 안창살, 제비추리, 채끝, 차돌박이 등 살코기는 물론 소혀(우설), 쇠골(우수), 쇠불알(우랑), 쇠다리(쇠족), 쇠꼬리, 쇠간, 처녑, 곱창, 막창 등 이런 저런 부속물을 남기고 떠납니다. 쇠뿔(우각)로는 공예품의 일종인 화각함을 만들고 쇠가죽은 소파로, 가방으로, 지갑으로, 구두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소는 마치 인간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코끝 찡한 소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허영만 화백이 그린 만화 ‘식객’입니다. 영화와 TV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식객’은 대한민국 최고의 음식 맛을 자랑하는 운암정의 대를 잇겠다고 나선 성찬과 봉주의 요리 대결이 주요 내용이지만 그 안에는 소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대령숙수(待令熟手·조선시대 궁중에서 음식을 담당했던 남자 요리사)의 적통을 잇는 요리대회를 코앞에 둔 성찬과 그의 친구들은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음식(그것은 다름 아니라 시장바닥에서 먹던 육개장입니다)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소(쇠고기)를 찾아 전국을 헤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마음에 드는 소를 찾지 못합니다. 그때 성찬의 친구들이 발견한 것이 성찬이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소 순진이입니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긴 성찬은 눈물을 머금고 순진이를 도살하기로 합니다.
감독은 이때 소의 눈을 클로즈업합니다. 속설에 따르면 소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뚜벅뚜벅 도살장으로 걸어 들어가던 순진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성찬이를 쳐다볼 때 감독은 필름을 느린 동작으로 돌립니다. 관객을 확 울려버리겠다는 심보죠. 감독의 의도는 100% 적중합니다. 순진이가 죽음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난 뒤 텅 빈 도살장 입구가 화면 가득 비칠 때 극장은 온통 눈물바다가 됩니다.
■우리 생활 속 소의 의미는
한국사람들의 소에 대한 관념과 서양사람들의 그것은 좀 다른 듯합니다. 뉴욕 월스트리트 한복판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황소 동상(Bronze Bull)만 봐도 이런 사실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 황소 동상이 세워진 것은 지난 1989년 12월의 일입니다. 아르투로 디모디카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조각가가 이 동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조각상이 뉴욕 증권시장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아르투로 디모디카는 20년 전 겨울 밤 남들이 모두 잠든 사이 이 동상을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놓아두고 줄행랑을 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 뉴욕의 신문들은 '깜짝 데뷔'라며 이 조각상의 등장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지난해 말 금융위기가 뉴욕을 덮쳤을 때 조각가 노라 리고라노와 마셜 리즈가 'E.C.O.N.O.M.Y(경제)'라는 제목의 얼음 조각상을 설치한 것과 비슷한 동기였습니다. 엉뚱한 조각가 아르투로 디모디카는 "1987년 10월 19일 그 유명한 '블랙 먼데이'를 겪으면서 영감을 얻어 황소 동상을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주식시장에서 상승장을 흔히 소에 비유해 '불 마켓(Bull Market)'이라고 하는데 황소처럼 힘찬 발걸음으로 미래를 활짝 열어젖히라는 뜻이었겠지요.
그에 비하면 동양에서 소는 은둔자 같은 삶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를 타고 노니는 노자(老子)의 그림이 대표적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매화나무 활짝 핀 산속 어딘가로 들어가 신선이 되고자 했던 노자가 함곡관(函谷關)을 지날 때였습니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윤희(尹喜)라는 관리가 노자를 알아보고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어디로 가십니까." 소를 탄 노자가 아무 말 없이 계곡 너머 피안(彼岸)을 가리키자 윤희가 또 물었습니다. "진정 은둔하려 하십니까." 역시 말이 없자 윤희는 재차 말을 던집니다. "언제 뵙게 될지도 모르는데 저에게 무슨 말씀이라도 주시고 떠나시죠." 그러자 소를 탄 노자가 허허 웃으며 "옜다, 이거나 가져라"라며 던져 준 것이 지금 전해지는 도교의 경전 '도덕경(道德經)'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선비들도 소를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소는 우직하고 순박할 뿐 아니라 여유로운 천성을 지닌 동물로 인식된 까닭에 선비들은 각별한 영물로 여겼습니다. 그런 흔적은 소를 소재로 한 시문이나 그림 등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한가로이 꼬리를 늘어뜨린 채 엎드려 있는 소를 포착한 김제(1524∼1593)의 '와우(臥牛)'나 웃통을 벗은 더벅머리 목동이 소등에 올라타 피리를 부는 모습을 그린 이경윤(1545∼1611)의 '기우취적도(騎牛吹笛圖)' 등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장(老莊)에게서나 우리 선조에게 소를 탄다는 것은 권세를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산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불교에서 소는 깨달음의 상징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 확암선사(廓庵禪師)가 처음 그린 것으로 알려진 '십우도(十牛圖)'는 사람의 참모습을 소에 비유해 마음 닦는 과정을 10가지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소를 찾는다(尋牛)'는 것은 곧 나를 찾는 것, 즉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급제했으나 출세를 단념하고 출가한 고려의 선승 지눌의 호가 '목우자(牧牛者)'라거나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이 자신의 거처를 '심우장(尋牛莊)'이라 이른 것도 다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힌두교에서도 소를 신성시합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힌두교의 성지인 인도에서는 절대 소를 잡아먹지 않습니다. 소가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신의 탈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소를 신성시했다는 견해가 더 옳은 지적 같습니다. 큰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오던 인도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쉽게 소를 잡아먹었는데 이러다 보니 정작 밭을 갈아야 할 땐 소가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소는 인간에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좋은 먹을거리(소젖)를 제공했고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 연료(소똥)로도 사용됐습니다. 이러다 보니 소의 도살과 식육이 철저히 금지됐고 이를 넘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과거 농경사회를 이뤘던 우리 조상에게도 소는 일종의 '동행자'였습니다. 소는 논이나 밭을 가는 힘든 농사일을 하는 데 필수적이었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는 운송 수단으로 활용됐으며 급한 일이 생겼을 땐 목돈을 장만할 비상금고 역할까지 했습니다. 지금 서울 세종로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와 함께 한 세상 이야기-우행전(牛行展)'에는 쟁기질을 하거나 짐을 지어 나를 때, 그리고 기생들이 한가롭게 나들이를 할 때 등장하는 소 그림이 여럿 전시돼 있습니다. 묏자리를 쓸 때도 소가 누운 모양(와우형·臥牛形)이나 소 뱃속 모양(우복형·牛腹形)의 땅을 명당이라고 할 정도로 소는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소 보기 참 어렵습니다. 어린아이들은 TV나 사진 등 영상매체를 통해서 소를 봤을 뿐 직접 본 일이 많지 않을 겁니다. 동물원에 가도 아프리카에 사는 사자나 적도 위 밀림에 사는 오랑우탄은 있어도 소는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만나는 소란 고작 쇠고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우 1근에 얼마라고 씌어 있는 식당에서 우리는 쉽게 그들과 만납니다. 지난해에는 미국 소가 들어오네 어쩌네 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소의 해를 맞아 소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모든 걸 주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습니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사진설명=소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새해 벽두부터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팔순 농부와 마흔살 소의 이별을 담담하게 그린 '워낭소리'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고 떠나는 소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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