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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칼럼] 카산드라의 예언을 피하려면/박희준 논설위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자 예언자 카산드라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의 예언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요즘 족집게 예언으로 성가를 올리고 있다. 카산드라와 같은 점이라면 그의 ‘비관적’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는 점이고 차이점이라면 그는 남자이고 그의 말을 누구나 믿는다는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예언한 데 이어 2006년부터 미국 금융시스템 붕괴를 ‘정확히’ 예언했던 그가 최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한국에 대해 한 마디 했으니 흘려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한국 경제 근간인 수출이 크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언제까지 직원 해고를 늦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경기 침체에 감원 바람까지 겹치면 한국 경기 전망이 한층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불길한 예언을 토해냈다.

공교롭게도 지식경제부는 1월 한국의 수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무려 32.8%나 줄었다는 통계를 2일 내놨다. 중소기업중앙회도 기업의 27%가 “일감에 비해 인력이 남는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이 안돼 생산이 안되는 데 사람은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올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거의 0%이거나 마이너스가 될 게 확실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루비니의 ‘감원’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고 한국이 ‘전대미문’의 실업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 임금 근로자의 최후 보루라는 자영업자들도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의 여파로 몰락, 그 숫자가 지난해 6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대량 감원으로 쏟아져 나올 실직자들이 기댈 언덕은 이제 한국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과연 루비니 예언을 빗나가게 할 수는 없을까.

감원이 불가피하다면 일자리 창출에서 해답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일자리를 만든다면 대량 감원의 충격을 덜어주고 대졸자들에게도 실업자의 딱지를 떼줄 수 있는 묘책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하는 사회서비스를 관련 분야 영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할 것을 제안하는 이유다.

현재의 사회서비스는 주로 취약계층에 간병, 장애인·노인보호, 독서지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는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0대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에 비해 12만8000명 줄어든 것과 대조적으로 50대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에 비해 18만5000명이 늘어난 것은 간병인과 노인 돌보미 사업 등 정부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덕분이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2007년부터 일자리를 늘려주는 바우처사업을 시행한 결과 2008년 말 독서지도 등 6만9771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졌다는 통계도 있다. 정부가 올해 12만5000개의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려는 것도 사회서비스가 일자리 창출 능력이 크다는 방증이 아닐까.

따라서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이나 발전에 긴요한 사회복지 및 환경개선과 관련된 분야에서 새로운 사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한편, 취약계층 채용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해주는 등 관련분야 제도 정비를 통해 사회적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현재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은 160여 곳에 불과하고 임금 등을 정부에 크게 의존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는 단기·저임금, 정부 의존형 사회적 일자리를 장기·고임금의 일자리를 낳는 신산업으로 육성하려면 뜻과 재원을 가진 교육·문화·환경분야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부터 발상을 바꿔야 한다. 사회적 서비스, 사회적 기업이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지원, 저소득층 생활고와 불안을 덜어주는 방안이 아니라 신산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정부의 세제 및 금융지원에다 청년층의 벤처정신, 기성세대의 경영 노하우 및 자본이 어우러진다면 루비니의 불길한 예언을 빗나가게 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joh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