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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CEO 파워인터뷰] 최우식 삼영엠텍 대표



삼영엠텍 최우식 대표에게 회사는 친자식과 같은 존재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지난 1997년 회사 설립에서부터 현재까지 삼영엠텍의 성장과정을 지근거리에서 계속 지켜봐왔기 때문. 지난 10여년간 회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해 오며 어느 덧 삼영엠텍의 일은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일까. 최 대표는 항상 회사를 가족에 비유한다. 또 직원들을 친동생이나 자식처럼 대한다. 경영이념까지도 고객 및 직원, 주주의 번영일 정도다.

직원용 가옥 15가구 제공 및 저이율 자금 대출 등 중소기업에서 찾아보기 힘든 복지제도가 삼영엠텍 내에 존재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 대표는 “항상 회사와 함께 하다 보니 벌써 12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지금까지 회사가 발전해 온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밝혔다.

■회사와 함께 12년

최 대표가 삼영엠텍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중공업에 다니던 그는 뜻을 모은 28명의 동료들과 함께 삼영엠텍을 설립한다. 또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영업권 및 지분 20% 투자, 제1공장 준공 보증 등 파격적인 대우도 보장받는다.

최 대표는 “당시 일본인 고문의 조언을 듣고 일명 봉급쟁이 28명이 모여 1억원의 소규모 자금을 바탕으로 창업이라는 큰 일을 저질렀다”며 “삼성중공업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대출이 어려웠던 당시 산업은행을 소개받아 자금을 조달하는 등 여러 가지 도움도 받게 됐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삼영엠텍은 외환위기(IMF)로 인한 국내 경제 한파 속에서도 회사의 기반을 새롭게 다져나간다.

‘위기=기회’ 라는 생각을 근간으로 회사 안정화에 집중한 셈. 특히 제품 전량이 일본으로 수출된 점은 삼영엠텍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회사가 항상 좋은 시절만 있을 수 없는 법. 삼영엠텍의 첫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28명의 창업 멤버간 다소 의견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 최 대표는 당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는 “당시 일부 인원에 대해 추가 지분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퇴사시켜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며 “하지만 지금도 회사를 떠난 창업멤버들과 연락하면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니 회사가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 후 회사 수출처를 확장해 2001년 코스닥시장 상장은 물론 12년 연속 흑자행진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2009년은 결실의 해이자 변화의 해

“올해는 삼영엠텍에 있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결실의 해입니다.”

최 대표는 기축년 2009년을 두 단어로 요약해 설명했다.

결실과 변화가 그것. 지난 2001년도부터 개발해 온 교량 강재 및 내진구조 부분 매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좋은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국내외 사회간접자본(SOC) 부문의 성장세로 향후 삼영엠텍이 사상 최대 실적에도 도전해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소재산업을 넘어 기계장치 부문까지의 진입도 준비 중이다.

최 대표는 “지금까지 삼영엠텍은 영종대교와 서울 및 울산 월드컵 경기장, 광명역 등에 납품하는 등 꾸준히 성장해 왔다”며 “특히 올해부터는 SOC 부문에 주력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이 부문에서 기록했던 130억원의 매출액을 뛰어 넘어서 230억원으로, 또 매출 비중도 20∼25%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그의 올해 계획이다.

최 대표는 “삼영엠텍의 기본 원칙은 바로 직원과 주주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만큼 내외적인 부문에서 결실을 맺어 직원은 물론 주주들의 기대와 관심에 보답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always@fnnews.com 안현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