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 지 농민화가 이종구의 국토, 세 가지 풍경전


■농민화가 이종구의 ‘국토-세 가지 풍경展’

서양화가 이종구(55)에게는 ‘농민화가’라는 타이틀이 늘 붙어다닌다. 작가 가운데 맨 처음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농촌을 중심으로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그들의 외침을 담으려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종구는 땅을 업으로 살아가는 농부들을 순박하고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고 기록해왔는데, 최근 농촌이 처한 현실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소’를 의인화시켜 이 땅의 농부들과 그들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표현한 맑은 눈을 가진 소는 그저 땅만 정직하게 바라보며 살아온 이 땅의 순박한 농부가, 사나워진 소는 우리 농촌의 위기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농부가 겹쳐 떠오른다.

소를 매개로 이 땅의 농부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농민화가 이종구의 ‘국토, 세 가지 풍경展’이 오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신관(02-720-1524)에서 열린다. ‘검은 대지’ ‘살림’ ‘만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번 전시에서 이종구는 과거 농민화가로서 사회문제에 날카롭게 파고들던 모습에서 벗어나 소나 옷이나 양동이 등 주변 사물을 통해 주제에 접근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은유하고 있다.

작가는 “소는 농부의 초상이자 우리 겨레의 초상입니다. 소의 세계도 사람의 세계와 비슷해 활달한 소가 있는가 하면, 수줍어하는 소가 있고, 맑은 눈을 가진 소가 있는가 하면, 분노하는 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소들을 통해 관람자 스스로의 상상력에 의해 우리 농촌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습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온통 긴장하거나 분노하고 있는 건 아니다. ‘검은 대지-모자’는 너무나 평화롭다. 한없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투명하고 맑은 눈으로 새끼 소를 바라보는 어미 소와 그에 화답하는 새끼 소는 비록 동물이지만 사람의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이종구는 ‘소’ 연작 이외에도 태백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달밤의 풍경을 통해 자연의 연속성과 너그러움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둥근 보름달이 어두운 대지를 비추는 ‘만월’ 연작은 더없이 서정적이어서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낳는다.

한편 학고재갤러리는 이번 전시기간 동안 본관에서 프랑스의 추상화가 베르나르 프리츠의 ‘The Development展’을 개최한다. 프리츠는 다채로운 색상의 줄이 무지개처럼 화사하게 뻗어 있는 작품 20여점을 선보인다.

/noja@fnnews.com노정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