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양사학회·푸른역사)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란 과목을 접하면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주 먼 옛날, 직접 살아보지도 못한 시절에 대해 확고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딱 그랬다.
고구려는 패기와 에너지가 넘친다. 드넓은 벌판을 따닥따닥 달리는 말과 기세 등등한 무사, 그 자체다. 그에 비하면 백제는 좀 희미하다. 일본에 다양한 문화를 전파했다지만 강렬하게 남는 그 무엇이 없다. 문화적 위상으로 치면 신라가 으뜸이다. 국사책에 실린 화려한 금관과 불상을 들여다볼 때마다 신라 특유의 고고함과 화려함에 넋을 놓게 된다.
맹목의 감탄을 거둔 것은 전교조에 몸담고 있는 한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신라가 3국을 통일했으니 백제와 고구려의 유물이 온전히 남아있을까?”
서양사학회에 몸담은 11명의 현직 교수가 공저한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역사의 승자, 유럽에 치우친 우리네 균형 감각을 바로잡는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모태가 유럽이었다는 ‘당연한’ 명제부터 따지고 드는 이 책은 종교, 제국주의, 9·11같은 대형 테러까지 아우른다.
학창시절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공감한 적이 있고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반감을 품었던 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다만 학술적인 문체 탓에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 않는 점은 좀 아쉽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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