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노칸(도쿠시마)=글·사진 송동근기자】 ‘아와(阿波 도쿠시마 옛지명)하면 쪽(藍), 쪽하면 아와’라 불릴 만큼 일본 전국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쪽.
이는 아와지방 영주 하치스카 집안이 여�과의 한해살이풀인 쪽을 재배하기 위해 적합한 땅을 요시노강 연안으로 선정하고 장려를 한 것이 그 발단이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아와의 북방 요시노강 유역의 농촌은 일본 최대의 쪽 재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좀더 그 기원을 살펴보면 헤이안(平安)시대 초기 아라타에라는 천을 짜던 아와인베가 재배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견성사(見性寺) 기록에 의하면 호우지(�治) 원년(1247년) 이곳에 사찰을 창건한 승려 스이케이가 당시 절터에 쪽을 재배, 옷감을 염색하기 시작했다.
그후 쪽 재배는 아와지방 하류 일대에 본격적으로 퍼져, 분안 2년(1445년)에는 대량의 ‘쪽이 아와에서 효고항에 들어왔다’는 것이 ‘효고북관입선납장’에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전국시대까지는 그 기술이 쪽의 잎을 물에 담궈서 염액을 만드는 침전염 기술밖에는 없었으나, 텐분18년(1549)에 미호시 요시타카가 교토에서 들여온 스쿠모가공 염색법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점차 이 지역이 전국적인 쪽 생산지로 알려지게 됐던 것. 또한 당시 도쿠시마 번(藩)에서도 쪽 재배와 가공을 장려해 드디어 아와 북방이 쪽 최대 생산지로 발전하게 됐다. 특히 목면(木綿)이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그 염료로써 쪽의 수요량도 크게 증가하게 됐다.
재배 규모도 점차 늘어났다. 칸세이 2년(1790년)에는 약 6500마을이 쪽을 재배했으나 메이지 35년(1902년)에는 재배 마을이 무려 1만2500여 마을로까지 급증했다. 아와의 쪽 상인들은 자주 번의 재정 궁핍을 해결해주기도 해 큰 신용을 얻었다.
호황을 누렸던 이같은 쪽이 메이지시대에 들어서는 독일로부터 값싼 인조염이 대량으로 수입되면서부터 점차 경쟁력이 잃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다시 천연 쪽의 장점이 크게 부각되면서 원조 쪽염색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쪽염색 염료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 그 명성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씻으면 씻을수록 색감이 돋보이는 쪽빛(남색). 천연 ‘쪽 물들이기’는 아이즈미쵸의 아이노칸과 아이조메 공예관 등에서 역사적 자료 관람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분카 5년(1808년)에 건축된 쪽 상인의 저택 오쿠무라에 들러보면 당시 쪽 상인들의 번성했던 역사적 현장을 더듬어볼 수 있다.
날로 인스탄트화 되어가는 요즘 아와지방 아이즈미쵸에서의 쪽문화 체험은 일본여행의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dkso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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