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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아침] ‘석면공포’ 가이드라인 마련해야/김성원 사회부 차장



“입으로 들어가는 석면이 더 해로운거냐, 코로 들어가는 석면이 더 나쁜거냐.”

요즘 점심시간이면 식당 곳곳에서 직장인들이 군복무 당시 삼겹살을 구워먹던 ‘슬레이트 판’ 얘기로 목청을 돋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경우 모두 일상생활을 위협할 정도의 ‘소리 없는 살인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98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연 상태의 일반 대기 중에도 석면은 공기 1ℓ당 0.1∼1개가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사람이 하루에 호흡하는 공기 1만4400ℓ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1440∼1만4400개의 석면 가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있는 셈이다.

또 우리나라보다 환경문제에 더 민감하고 환경 관련 소송도 다반사로 일어나는 미국의 경우 먹는 물의 석면 허용 기준을 물 1ℓ당 700만개로 규정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임호주 박사는 “지난 1979년 캐나다에서는 상수도 라인에 쓰인 석면시멘트 파이프에서 ℓ당 20억개의 석면 분진이 검출됐지만 역학조사에서 위해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건강한 성인도 폐 1㎏당 20만∼30만개의 석면 가루가 쌓여 있고 많게는 100만개까지도 나온다”고 말했다.

자의든 아니든 석면 가루를 먹게 되는 것은 코로 호흡한 것보다 덜 위험하다고 한다. 석면은 우리 몸에 들어와도 강산성인 위액에 의해 대부분 소화된다. 배변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 나가기도 한다. 과거에 석면을 섭취한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이 때문에 알약을 만드는 데 쓰이는 탈크에서 석면이 나왔다고 병원의 환자들마저 알약을 기피하고 있다. 베이비파우더의 원료인 탈크에서 석면이 발견된데다 중국에서 수입된 이 탈크가 화장품 등 300여개 제품에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만성질환자들까지 약을 안 먹겠다는 것은 과민반응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석면에 의해 오염된 음용수나 파우더 제품의 경우 인체 유해 가능성은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석면 함유 화장품이나 경구 알약의 경우 피부 흡수, 또는 소화기를 통한 위해 요소는 거의 없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 문제가 된 일부 중소업체를 제외하고는 업계 대부분이 석면을 함유하지 않은 일본산 탈크를 수입해 쓰고 있다.

지난해 환경부는 가정용품의 석면 방출 가능성을 조사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러닝머신, 세탁기, 냉장고, 김치냉장고 등의 가동이나 해체 때 석면은 방출되지 않았다.

또 석면 사용이 금지되지 않은 자전거나 소형 오토바이의 브레이크 작동 검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석면이 국제적으로 1급 발암성 물질이며 우리 생활 주변에서 여전히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노출의 농도와 빈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정부 당국의 서투른 대응도 국민의 걱정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기업은 국민이 ‘석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홍보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석면의 위협이 가장 큰 건물 철거나 해체 공사장, 지하철 역 등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조치가 시급하다. 환경부, 노동부, 보건복지가족부, 식품의약품안전청,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안전성 검사가 분산된 것도 해결해야 한다. 석면을 통합 관리할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대안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석면 노출에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건설사들이 석면 제거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철거 중에 석면이 드러나도 신고하지 않는다.
건설사들은 철거업체에 제거를 맡기고 철거업체는 다시 전문업체에 하청·재하청을 줘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정부는 ‘석면은 미국 인체독성 순위에서 90위에 불과하다’는 항변 이전에 법·제도적 보완과 함께 건설현장 사전 점검이나 사업주 안전교육부터 강화해야 한다. 또 현 상황에서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석면 관련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고 대책 수립에 나서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win5858@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