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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모토 기쿠치성 |
【기쿠치성(구마모토현)=글·사진 송동근기자】1300년전 고대의 깊은 정취에 싸인 기쿠치성(鞠智城). 이곳은 구마모토현의 야마가시 요나바루 지역을 중심으로 기쿠치시 호리키리지역까지 펼쳐진 드넓은 성터다.
이 성은 동아시아의 긴박했던 국제 정세속 7세기 후반에 쌓은 고대 산성중 하나로 속일본기(續日本紀)에도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중요 유적(2004년 2월 국가사적으로 지정)중 하나. 면적도 55만㎡에 달하는 내성과 65만㎡의 외부 둘레로 이뤄져 있어 꽤나 넓다.
이곳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67년. 지금까지 72동의 건물터가 발견됐고, 지금의 건물들은 모두 구마모토현에서 생산된 재료들만을 사용해 복원해 놓은 것.
키쿠치성은 한마디로 7세기 후반 야마토(大和)국이 세운 산성이다. 당시 주변국 등의 정세는 매우 혼탁하고 위급했다. 일본은 663년 백촌강(白村江)전투에서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전황이 급변, 일본이 전쟁의 주무대가 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됐던 것. 따라서 규슈에는 지방 행정기관 타자이후(太宰府)를 지키기 위해 오노성(후쿠오카현)과 기이성(사가현), 가나다성(나가사키현)이 지어졌다. 기쿠치성은 당시 이 성들에 식량과 무기, 그리고 병사들을 보급하는 지원기지였던 셈이다.
우선 성터에 들어서면 지난 1996년에 세워진 기쿠치성 온고창생비(溫故創生碑)가 한눈에 들어 온다. 고대를 그리워하는 키쿠치의 심볼로 잘 알려져 있다. 비(碑) 한 가운데는 사키모리(칸토지방에서 징발돼 북부 규슈의 요지를 경비하던 병사)가 서 있고, 전면에는 그의 아내와 아들, 서쪽에는 축성을 지도했던 백제의 귀족, 동쪽에는 기도를 드리는 무녀, 그리고 북쪽에는 한쌍의 봉황이 앉아 있다.
성터 멀리 팔각형으로 된 보루도 보인다. 이는 일본내 고대 산성에서는 최초로 발견된 것으로 3중 구조로 돼 있다. 직경 90cm의 축을 중심으로 기둥이 세겹이나 둘러져 있고 높이는 15.8m. 또한 지붕에는 총중량 76t의 기와가 얹어져 있어 그 무게 만큼이나 세월이 느껴진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성터 전체를 돌아보기전 성내에 자리하고 있는 온고창생관에 들러보자. 기쿠치성의 역사나 구조에 대해 알기쉽게 소개하고 있다. 지난 2002년에 오픈, 1층에는 사진 출토 유물과 모형, 전시해설실, 성내 볼만한 곳이나 기쿠치강 유역의 문화유산 영상해설실 등이 자리해 있다. 그야말로 일본 고대사를 배울 수 있는 축소판 역사학습장이라 하겠다. 아울러 한반도의 문화를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돼 있어 한국 여행객의 관심을 끈다. 2층에는 무료로 공원 전체 모습을 돌아보며 쉴 수 있게 구성됐고, 구마모토 현립 공업고 학생들이 만든 실물의 1/10 크기의 성(城)모형도 볼만하다.
미창(米倉)은 당시 전투시에 식량을 보관했던 곳으로, 전체 폭이 7.2m에 길이 9.6m의 규모로 이뤄져 있다. 내부(5.5mx7.2m)는 누마루(다락 처럼 높게 만든 마루)식 건물로 여행객들께 신기함을 한층 더해준다. 이는 벽을 삼각형으로 된 나무 재료를 가로와 세로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든 아제쿠라(校倉) 양식이 특징이다. 지붕은 가야부키(초가지붕)로 이뤄져 있고, 건물 가장자리에는 쥐의 피해를 막기 위해 네즈미가에시라는 판자가 설치돼 있다.
북부 규슈를 지키던 병사들이 기거하던 곳, 병사(兵舍)에도 둘러보자. 전체 폭 7.8m에 길이는 26.6m. 안쪽을 들여다 보면 5.5mx18.2m의 규모에 벽은 흙벽, 바닥은 흙마루로 돼 있다. 보통 한 건물에 50명의 병사가 당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멀발치서 키쿠치성을 바라다보면 고루(鼓樓)에서 북소리와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이 금방이라도 들릴듯하다.
/dkso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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