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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유령 가면을 거머쥔 사나이



경사가 겹쳤다. 오는 9월 28일 서울 잠실 샤롯데 씨어터에서 공연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주인공 팬텀 역에 낙점된 양준모(30) 이야기다. 지난 4월 결혼식을 치르고 막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호주에서 본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소감을 전하며 들뜬 기분을 그대로 드러냈다.

데뷔 5년차인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초반 2년간 지방과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다 2007년에야 서울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을 보는 것은 배우의 의무’라고 말했던 그에게는 이제 ‘대중들에게 스스로를 알려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1999년 오페라 ‘마술피리’로 데뷔한 그는 촉망받는 성악도였다. 대학 졸업반이던 2004년 우연히 가극 ‘금강’에 합류하면서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금강’은 시인 신동엽의 서사시에 음악과 드라마를 입힌 것으로 6·15 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해 2005년 평양에 진출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당시 장민호, 서희승, 양희경, 강신일 등 쟁쟁한 원로 배우들과 함께 연습했어요. 제 대사를 뱉는 것조차 황송한 분위기에서 연기 공부를 했죠.”

어렵게 준비한 공연으로 평양 무대에 선 그는 객석의 열정적인 반응에 깜짝 놀랐다. 좋은 옷을 차려입고 점잖게 관람하는 사람들이 주류인 오페라 공연에선 한번도 느끼지 못한 환대였다. 이 공연을 계기로 그는 전업을 결심한다.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와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부산 사나이’였던 그가 넘어야 할 첫번째 장벽은 사투리였다. “선배 배우에게 맞아가면서 배웠어요. 제2외국어를 배우는 심정으로 외우고 반복했죠. 결국 3개월 만에 서울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됐어요. 물론 지금도 가끔 사투리가 튀어나와요.”

성악을 전공했다고 노래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뮤지컬은 오페라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뮤지컬 창법을 배울 만한 곳을 찾는 게 여의치 않자 홀로 발성을 익혔다. 2007년 뮤지컬 ‘천사의 발톱’ 출연에 이어 ‘스위니토드’의 주연을 거머쥐면서 마니아들은 그를 주목했다. 특히 ‘스위니토드’에서는 ‘톱스타 류정한 못지 않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격투기 선수를 연상케하는 체격과 강렬한 인상을 지닌 그는 뮤지컬 무대가 선호하는 ‘꽃미남’ 부류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역을 찾아다니며 오로지 실력으로 몸값을 높여왔다.

“오페라를 하던 시절 제 음역은 바리톤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악역을 많이 맡았어요. 뮤지컬 무대에서도 장군 아니면 조폭 두목처럼 강한 역을 주로 하게 되네요.”

주어지는 배역도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10∼20세쯤 많다. 20대 역할을 한 것은 지난해 공연한 2인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가 유일하다.
그나마도 자신과 잘 맞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고 귀띔한다.

“첫 공연을 하고 나서 ‘어, 이게 아닌데’ 싶더라구요. 노래와 배역이 겉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공연이 진행될수록 나아지긴 했지만 정말 힘들었죠.”

지난 한해 뮤지컬 ‘이블데드’ 연극 ‘아일랜드’ 등 소극장을 돌며 연기력을 다진 그는 다음달 10일 중극장 작품인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큰 무대에 복귀한다.

“고생하면서 단련되는 기분이 참 좋아요. 나이와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외국에 나가 뮤지컬 공부를 할 계획도 있습니다. 궁극적인 꿈이요? 제가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을 후배들은 느끼지 않도록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