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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콩을 들다...제2의 우생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잘 빚은 항아리’에 비유하곤 했다. 그들의 관심은 정교한 플롯의 구성과 이야기의 정치(精緻)한 구조 등 주로 형식미에 쏠려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범수·조안 주연의 스포츠 휴먼 드라마 ‘킹콩을 들다’(감독 박건용)는 잘 빚은 항아리가 아니다. 스테레오타입화한 캐릭터와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 감정의 과잉이 역력한 신파 코드 등은 결정적인 감점 요인이 될 만하다.

그러나 ‘킹콩을 들다’가 관객과의 접점을 찾는 대중영화로서의 매력마저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킹콩을 들다’의 첫번째 관전 포인트는 이번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킹콩을 들다’는 지난 2000년 제81회 전국체전에서 전체 15개의 금메달 중 14개의 메달을 싹쓸이 한 시골 여고 역도부의 기적같은 스토리를 모티브로 했다. 곽경택 감독의 ‘태풍’ 등에서 조감독으로 활약했던 박건용 감독은 “어린 소녀들이 눈물을 흘리며 역기를 드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곽경택 감독에게 처음 들었다”면서 “역도복을 입고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바벨을 드는 소녀 역사(力士)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에 집중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함께 볼 만한 감동의 드라마라는 점 역시 이번 영화의 강점이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은 ‘킹콩을 들다’는 자녀들과 함께 봐도 될 만큼 교훈적이고 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역기 보다 더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시골 소녀들의 애틋한 사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훈훈하게 할 만하다. 영화 제작진이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준우승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로 대박을 터뜨린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영광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신파 코드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관객과의 접점을 찾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순진무구한 시골 소녀들을 ‘여성 헤라클레스’로 담금질하는 이지봉 선생(이범수 분)의 느닷없는 죽음과 설득력이 결핍된 악당 캐릭터의 등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지만 실제로 시사회 때 많은 여성 관객들이 이 대목에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은 제작진으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감독과 배우들로서는 심혈을 기울였을 이 대목에서 보다 많은 관객을 설득하고 울리지 못한다면 ‘제2의 우생순’을 꿈꾸고 있는 이번 영화의 흥행에 적신호가 켜질 수도 있다. 전체관람가. 7월 2일 개봉.

/jsm64@fnnews.com정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