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지상유전’으로 불리며 정유사에 든든한 수익을 안겨주던 고도화설비마저 역마진으로 돌아서자 ‘3·4분기에 적자가 날 것”이라는 공포가 정유업계에 드리우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50달러 이상까지 차이났던 벙커C유와 휘발유·경유·등유의 가격차(배럴당)가 지난 15일 5달러대까지 떨어지며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급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정유사들은 기본적으로 두바이유를 수입해서 휘발유, 경유, 등유, 벙커C유를 생산해 판매한다. 때문에 원료인 두바이유 가격과 제품인 휘발유 등의 가격차이에 따라 정유사의 수익성이 결정난다.
원료-제품의 가격차인 정제마진은 이미 지난 5월부터 국제적인 수요감소로 마이너스대로 돌아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6월 첫째 주 싱가포르 시장에서 원유로 석유제품을 만들고 남은 이익인 국제 단순정제마진은 배럴당 -3.56달러까지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원유를 정제해 제품을 만들수록 손해라는 의미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수조원대의 돈을 들여 건설해 놓은 고도화설비 덕에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도화설비란 벙커C유를 재처리해 휘발유, 경유, 등유를 생산해내는 공정이다.
벙커C유의 가격은 원유보다 낮은 수준에 형성돼 왔다. 원가에도 못미쳐 비수익제품으로 치부되던 벙커C유가 고도화설비를 통한다면 수익성이 높은 휘발유, 경유 등으로 바뀌는 것. 때문에 그동안 고도화설비는 ‘지상유전’으로 불리며 국내 정유사에 높은 수익을 안겨줘 왔다.
하지만 최근 벙커C유의 가격과 휘발유·경유·등유의 가격차이가 좁혀지면서 고도화설비마저 역마진으로 돌아섰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고도화설비의 가동원가가 배럴당 8달러정도 한다. 하지만 15일 기준으로 벙커C유와 경유의 가격차는 고작 5.54달러에 지나지 않는다”며 “고도화설비를 돌려봤자 손해가 나고 있으며 3·4분기 영업적자를 각오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15일 기준으로 벙커C유와 휘발유의 가격차는 7.3달러, 등유와의 가격차는 6.95달러로 고도화설비 가동원가에도 못미친다. 지난해 7월의 경우 벙커C유와 경유의 가격차이가 54.67달러에 달해 고도화설비 단순마진이 40달러를 넘어섰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같은 역마진현상의 원인으로 정유사들은 국제적인 공급초과와 수요부족에서 찾고 있다. 인도의 릴라이언스가 올해 초 하루 54만배럴의 정유공장을 풀가동하기 시작했고 중동지역에 새로 지어진 정유공장도 줄줄이 가동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불경기로 인해 휘발유, 경유의 국제수요가 하락하고 있어 수급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올 초 출시된 도요타의 프리우스나 현대차의 아반떼 하이브리드, 내년 출시예정인 GM의 볼트 등 전세계에 연비가 높은 친환경차가 쏟아져나오고 있다는 점도 정유사에는 악재다. 그만큼 장기적으로 휘발유·경유의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언젠가는 국제수급이 개선되겠지만 정유사로서는 정유업에 안주하기보다는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yscho@fnnews.com 조용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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