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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소설들 뮤지컬로 ‘외도’



‘캣츠’ ‘브로드웨이 42번가’ ‘맘마미아’….

국경을 넘나들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외국 뮤지컬의 강점은 음악과 춤이다. 반면 이들의 줄거리는 단조롭다 못해 시시할 정도다. ‘캣츠’는 150여분 동안 고양이들의 자기 소개가 이어지고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시골 처녀의 뻔한 성공담을 다룬다. ‘맘마미아’ 역시 결혼을 앞둔 딸과 엄마의 심정을 그린 게 전부다. 결국 이들을 유명하게 만든 건 드라마가 아니라 유명 넘버와 압도적인 군무인 셈이다.

뮤지컬 제작을 크게 극본과 작곡으로 나눌 때 확실히 국내 창작뮤지컬은 드라마에 집중한다. 창작뮤지컬 ‘루나틱’을 만든 백재현 연출자는 “적은 자본으로 대중의 공감을 사려니 돈이 많이 들어가는 무대장치, 웅장한 음악 대신 오밀조밀한 이야깃거리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현실에서 탄탄한 원작은 흥행의 필수조건이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최근 공연계에서 각광받는 이유다. 오는 10월 성남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김훈 원작의 뮤지컬 ‘남한산성’과 정이현 원작의 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11월, 극장 용), 김영하 원작의 뮤지컬 ‘퀴즈쇼’(12월 5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신경숙 원작의 연극 ‘엄마를 부탁해’(2010년 1월, 세종문화회관 M극장) 등이 좋은 예다.

소설의 뮤지컬 진출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대형 창작뮤지컬로 독보적인 명성을 떨쳐온 ‘명성황후’는 소설가 이문열의 ‘여우사냥’을 극으로 만든 것이며 45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2007년 초연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고 차범석 선생의 ‘산불’이 원작이다.

‘남한산성’ ‘퀴즈쇼’ ‘달콤한 나의 도시’ ‘엄마를 부탁해’ 등 인기 소설을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바꾸는 데엔 득과 실이 공존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제작 중인 오디뮤지컬컴퍼니 측은 “소설이 워낙 큰 사랑을 받아 TV 드라마까지 제작된 상황이라 인지도 면에선 매우 유리하다”면서도 “책도 읽고 드라마도 봤는데 뭐하러 뮤지컬까지 봐야 하느냐는 여론도 있을 수 있어 차별화된 관객공략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퀴즈쇼’의 제작사인 신시뮤지컬컴퍼니는 “원작의 맛을 살리되 각색자도 뮤지컬 특유의 색깔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절충점을 찾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시뮤지컬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저서 ‘뮤지컬 드림’에서 ‘댄싱 섀도우’의 참패 원인으로 원작의 특색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점을 꼽는다. 해외 유명 작가에게 각색을 맡기면서 원래의 정서를 잃었고 ‘산불’의 아우라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원작의 개성이 강할수록 각색자의 고충도 크다. 소설이 구현하는 주제가 어렵거나 무거울 때, 혹은 소설의 시점이 무대 화법과 맞지 않을 때엔 특히 그렇다.

일례로 뮤지컬 ‘남한산성’은 원작 소설의 얼개를 완전히 허물었다. 소설에선 김상헌과 최명길이 명분과 실리를 두고 갈등을 빚는 것이 주요 장면이지만 뮤지컬에선 이들의 존재를 최소화했다. 원작에선 서너 차례 언급됐을 뿐인 오달제는 주인공으로 대폭 승격됐으며 가상의 여인까지 가세해 사랑 이야기를 부각시켰다.

뮤지컬 ‘퀴즈쇼’ 역시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가는 1인칭 시점의 소설 방식을 대폭 뜯어고쳤다. 현재 배우 캐스팅을 진행하고 있는 이 작품은 소설 속 굵직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재구성될 예정이다.

한편 자신의 작품이 공연으로 거듭나는 데 대한 작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소설가 김훈은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만 몰고 가지 말라. 나머지는 무대에 맞게 알아서 고치라”고 일임했고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의 각 장면을 구상할 때 연극무대에서 독백을 하는 기분으로 썼다”고 호감을 표했다. 정이현은 당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1년 만에 뮤지컬 작업에 선뜻 동의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사진설명=베스트셀러 소설이 최근 공연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김훈씨(오른쪽) 원작의 뮤지컬 '남한산성'이 대표적인 실례다. 지난 2월 12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성남아트센터 이종덕 사장(오른쪽 두번째)이 자리한 가운데 김훈씨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