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시대 배우는 가면을 썼다. 가면을 쓰고 제단에 올라 부족의 번영을 위해 신에게 소원을 빌었다. 어떤 때는 양의 탈을 쓰고 순한 양처럼 신에게 애원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호랑이 탈을 쓰고 협박조로 매달리기도 했다. 주로 무당이나 부족의 우두머리가 그런 역을 담당했고 그것이 배우의 탄생 기원이다. 이때 썼던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는데 요즘 연극학에서는 배우가 가진 ‘외형적인 특징’을 일컫는 말로 해석되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오지명씨가 두 손을 치켜드는 습관이나 영화 ‘올드 보이’에서 최민식의 독특한 머리 스타일 같은 것이 페르소나다. ‘레옹’에서 주인공 장 르노는 청부 살인업자이지만 살인을 하고 도망을 다니면서도 늘 연약한 식물을 심은 작은 화분 하나를 가지고 다닌다. 그런 페르소나 하나로 악인이 착한 살인자로 변모된다.
페르소나는 배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도 자신만의 특이한 페르소나를 가진 이들이 많다. 쿠바의 카스트로 대통령을 떠올려 보라. 바로 군복과 긴 수염이 생각날 것이다. 그는 군중 앞에 나타날 땐 군복을 입고 수염을 휘날리며 등장한다. 그가 그런 복장을 한 것은 50년대 부패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게릴라전을 펼칠 때부터였다. 혁명이 끝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 복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인민을 위해 혁명 중이오!”라고 선언하기 위한 것이다.
히틀러도 특이한 페르소나를 가진 정치가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하일! 히틀러”하고 손을 쳐드는 게슈타포가 떠오를 것이다. 당시의 독일인들은 히틀러부대의 그 특이한 외형적 제스처에서 카리스마와 포스를 느꼈을 것이다. 처칠도 그런 인물이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늘 시가를 물고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해군제독을 지낸 사나이로서 강인함을 과시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링컨은 자신의 험상궂은 얼굴에 턱수염과 콧수염을 길러 인자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페르소나를 만들었고 그 결과 대통령에 당선될 정도의 멋진 이미지를 얻었다고 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수많은 지도자가 존재하지만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사람은 주로 자기만의 페르소나를 가진 지도자들이다.
최고경영자(CEO)도 지도자다.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선 전문성을 갖춰야 할 것이며 현장을 잘 알아야 하고 강한 카리스마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는 능력과 더불어 매력을 요구하는 시대다. 그래야만 조직원을 더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드라마도 주인공이 매력적인 페르소나를 가졌을 때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CEO에게도 나름의 페르소나가 존재할 때 매력적인 주인공이 된다.
그렇다고 콧수염이나 턱수염, 나비넥타이를 매라는 말은 아니다. 선글라스나 굵은 시가만이 페르소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새해가 되면 멋진 좌우명을 선물하는 CEO. 늘 소설책을 끼고 다니는 CEO. 생일을 맞은 직원에게는 직접 고른 와인을 선물하는 CEO도 괜찮겠다. 최신 유행 인터넷 유머나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를 젊은 사원들보다 더 먼저 알고 전파하는 CEO,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젊은 사원들에게 그런 유머로 재치 있게 대화를 거는 모습은 나이를 낮추고 감각을 높이는 멋진 페르소나가 될 것이다.
내가 아는 CEO 한 분은 죽비를 사무실벽에 걸어놓고 있다. 혼자 있을 땐 중얼거리며 자신의 어깻죽지를 ‘퍽퍽’ 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결재를 하기도 하고 보고를 받기도 한다. 그가 죽비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사원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지시로 해석할 것이다. 그래서 별명이 죽비처사가 되었다고 한다.
CEO만이 페르소나가 필요하겠는가. 매력적인 CEO가 되려는 모든 사람, 아니 개성 있게 살아가려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페르소나가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쓰는 동안 TV에서는 박찬호 선수의 야구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마침 파울볼이 나고 심판이 공을 던져준다.
그는 공을 받자마자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관중은 박수를 보낸다.“아, 저게 동양이야. 저게 동양의 예절이야!”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서 히트한 ‘페르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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