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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M&A 방패’ 생긴 기업,투자여력도 생길까?



법무부가 9일 공개한 포이즌 필 도입 관련한 상법 개정안이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보호 환경에 획기적인 전환기를 마련할 전망이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개방으로 국내 우량 대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외국 기관투자가들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며 ‘주가 부양→수익률 확보’로 이어지는 이른바 ‘먹튀’를 일삼는 것에 대해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어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환 위기 이후 공개매수 제도나 외국인 주식취득한도 제한이 폐지되는 등 적대적 M&A 공격은 쉬워진 반면 이를 방어키 위한 수단이 없어 공격과 방어 수단 간의 불균형이 존재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조치로 국내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에 묻어뒀던 유보금을 민간투자에 적극 활용해 기업 경영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활로를 모색하게 됐다.

■경영 전념·민간투자 강화 기대

정부는 우선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poison pill) 제도 도입 이유를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조성, 경영권 유지에 불필요하게 과도한 비용이 들지 않게끔 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월 현재 상장사들의 자사주 보유액수가 64조원에 이른다. 국내 기업들이 이렇다 할 경영권 방어 수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사주 매입에 집중하면서 민간투자 여력이 줄어든 것.

실제로 지난 2003년 SK와 소버린 사태, 2006년 칼 아이칸의 KT&G와 삼성물산에 대한 공격이 발생한 이후 국내 대기업들은 해마다 4조∼7조원가량을 경영권 확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는 형편이다.

김우현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은 “투기 자본으로부터 견실한 국내 기업들을 보호키 위해 도입됐다”며 “SK, KT&G, 현대엘리베이터 사례 등이 있었다. 향후 발생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이번 포이즌 필 제도 도입으로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용해왔던 자금을 민간투자로 유인해 경기 회복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적 지분 구조의 특성인 오너의 경영권 보호에 관한 암묵적 합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우량 상장사에 대한 외국계 투기자본의 ‘머니 게임’에서 벗어나 강력한 오너 체제를 구축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주주와 기업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절차 간소화 등 보완 시급

그러나 이번 포이즌 필 도입안이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포이즌 필이 실제로 가동되기 위해선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로 정관을 변경한 뒤 적대적 M&A 상황이 벌어지면 이사회 결의만으로 포이즌 필을 가동할 수 있게 한 이번 개정안이 복잡하다는 이유에서다.

전경련 황인학 산업본부장은 정부의 포이즌 필 도입에 대해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 본부장은 다만 “정부가 도입요건으로 삼고 있는 주주총회 참석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특별결의 요건은 다소 아쉽다”면서 “현실적으로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회사는 외국인들의 반대로 포이즌 필 도입안이 특별결의에서 통과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관변경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보통결의로 요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사회 결의와 같은 완화된 요건으로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포이즌 필은 과거 KT&G나 포스코의 사례에서와 같이 지분구조가 분산된 기업에 더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며 미국이나 일본은 이사회 결의로도 가능하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특별결의를 할 정도로 지분을 확보한 기업이라면 사실상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 없는 기업인데 이런 기업에만 인정한다는 것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제3자배정 불가 방침에 대해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본 신일본제철도 2년 전부터 포이즌 필을 도입해 주식선택권을 주주들에게 부여한 상황으로 제3자 배정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번 국내 조치는 제3자 배정으로 주식선택권을 부여할 수 없도록 돼 있어 경영권 방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도한 경영권 보장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도 예고되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미국 이사회는 독립적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총수 일가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정관 변경만 되면 언제든 포이즌 필 발행이 가능해져 총수의 기업 장악력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포이즌 필 도입은 21세기 신쇄국주의 발상”이라며 “관계부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포이즌 필 도입 논의는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포이즌 필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고 투자 활성화와도 무관하며 기업가치 하락과 외국인 투자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홍석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