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서동일기자 |
지난해 우리 문화유산계는 소중한 성과를 여러 개 이루어냈다. 조선왕릉, 동의보감 등 세계유산이 연이어 탄생했고 고종 황제어새 등 국외 유물 환수도 의미가 작지 않다. 숭례문 화재 당시 복구 임무를 띠고 부임한 이건무 문화재청장이 오는 8일로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이 청장은 문화유산에 스민 갖가지 사연과 역사적 배경을 꿰뚫고 있는 고고학자이면서 문화재 활용 산업(헤리티지 인더스트리)에 있어서는 '아이디어 맨'이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이 청장을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만났다.
―조선왕릉 40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등 성과가 많은데 취임 2주년을 맞는 소감은.
▲지난 2년 바쁘면서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숭례문 화재 직후 취임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문화재방재 대책에 우선 순위를 뒀다. 숭례문 화재 전인 2007년 15억원에 그쳤던 방재 예산이 2008년 215억, 2009년 689억원으로 늘어났다. 일부 부진한 면이 없지 않지만 시설과 경비 인력을 크게 늘렸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와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 그리고 강강술래 등이 인류무형유산 목록에 오른 것이었다. 문화유산의 발굴, 조사에서는 미륵사지 석탑에서 금제사리봉안기와 함께 불사리가 담긴 사리함을 포함한 사리장엄구 일괄을 발견하여 역사학, 고고학, 미술사학계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게 됐다. 백제 금석문으로 본다면 무령왕 지석 발견 이래 최대의 성과였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는데.
▲최근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와 심사과정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요구하는 보존관리 수준도 매우 높다. 여기에다 국제협력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6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현장은 가히 문화전쟁터였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중국, 캄보디아 등 각국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도 외교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평상시에 유네스코의 각종 회의에 적극 참여, 친목을 돈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유네스코 등재여부가 올해 결정될 것이라는데 지금 분위기는.
지난해 1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거쳐 9월에 있었던 전문가 현지 실사와 서류 평가 등을 통해 두 마을의 세계유산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진행 중에 있지만 그 등재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세계 각국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경쟁이 치열한 데다 유네스코가 향후 관리계획, 주변 토지나 완충구역에 대한 소유권, 보호방법 등에 대한 정보 제공 등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 및 세계유산에 대한 해외 전문가의 관심과 평가는 어느 정도인지.
▲한국은 현재 9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의 고구려벽화고분군까지 더하면 10건, 중국이 관리하고 있는 고구려벽화고분군까지 포함하면 11건이다. 이탈리아가 43건, 스페인 41건, 중국이 37건을 보유하고 있는데 중국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에 땅도 넓다. 서양의 전문가들은 동양의 신비로움이 기저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한국의 문화재에 대해 매우 특이하고 놀라운 과학적 구도, 종교에 바탕을 둔 정신세계, 제례나 의식과 같은 무형 유산과의 결합(조선왕릉, 석굴암, 해인사장경판전, 종묘…) 등에 경탄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 유네스코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국제기구 관계자들 대부분이 우리의 문화·자연유산을 꼭 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한국의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한 나라의 특성이 배어있는 문화 내용이야 말로 세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왕릉만 하더라도 단순히 능의 외형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자연에 순응한 입지, 철학적 사상이 가미된 건축 배치, 효를 바탕으로 한 제례 등 한국만이 지닌 유·무형의 아름다움 때문에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다. 한국의 미를 단적으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별, 작품별 그리고 작품이 지닌 색, 선, 형태별로 미에 대한 가치 판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자연적인 미'(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들보로 사용하고, 인공담장이 나무를 피해 조성되도록 한 자연에 대한 배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배치), 과장하지 않는 '겸손의 미'(선을 무리하게 강조하거나 강한 색조사용 등이 보이지 않음),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아 편안함과 적당함을 느끼게 해주는 '중용의 미', 세부적인 것보다는 전체적인 균형을 따르는 형평과 '조화의 미'(기계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한 것이 아니고 대충 어림짐작으로 손질하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적절히 잘 들어맞는)가 아닐까 한다. 한국적 감성과 풍미가 가득한 전통 아래서 생겨난 아름다움이라고 하겠다.
―국외 문화재 환수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는데.
▲문화재는 한 민족, 나아가 인류 모두가 함께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한 국가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의 정수인 문화재는 원 소유국에서 훼손됨 없이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전승돼야 하며 결코 약탈되거나 불법으로 거래돼서는 안된다.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 환수에 대해서는 신미양요, 병인양요, 일제강점기 등의 시기에 약탈이나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우리 국민의 정신적 가치와 민족문화의 정체성 형성을 위하여 적극 환수하고 적법하게 반출된 경우에는 현지에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홍보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동안 정부간 협상이나 기증 협의, 구입 등을 통해 2005년 북관대첩비, 2006년 조선왕조실록·김시민 장군 교서, 2007년 어재연 장군 수자기(帥字旗), 2008년 최남복 문집 목판, 영친왕과 영친왕비 관련 유물, 지난해 고종황제 어새, 진해 망주석 등이 국내로 환수됐다.
―최근 스토리텔링의 힘이 강조되고 있는데 문화유산과 관련된 활용 방안은.
▲지난해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단종 애사(哀史) 등을 비롯한 왕릉 관련 스토리텔링이 결정적인 이바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재청이 추구하는 스토리텔링은 문화유산에 내재된 다양한 스토리를 발굴해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각종 문화 콘텐츠와 융합, 확산시키는 것이다. 2007년부터 매년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을 개최해 일반인들의 이해를 높이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헤리티지 인터스트리'(Heritage Industry·문화유산 활용산업) 활성화가 문화재청의 과제라고 했는데.
▲문화유산에는 수천년 동안 쌓여온 선조의 지혜가 녹아있어 문화산업 활성화에 있어서는 아이디어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문화유산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헤리티지 인더스트리는 그동안 문화상품 및 콘텐츠 개발, 관광자원 활용뿐만 아니라 패션디자인 활용이나 국악·판소리·연극·음악회 등 전통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문화유산과 우리의 경제 그리고 기술이 결합되고 또 문화유산이 자연환경과 연계되어 산업화되는 등 보다 다양한 분야로 확대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의 기록화 및 아카이브 등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 우선돼야 하고 활성화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관광에도 문화유산의 볼거리(관람, 공연), 먹을거리(전통음식), 숙박체험(한옥 숙박) 등이 연계되고 문화상품의 브랜드화를 위한 박람회 개최, 세계유산 연계 상품 개발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문화유산의 산업적 접목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연구는 아직 크게 부족하다. 문화재청에서는 이를 보강하기 위해 지난해 4월 문화재청에 전담기구(문화재활용국/활용정책과)를 신설하는 등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지원할 계획이다.
―취임 3년째에 역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은.
▲올해부터는 '헤리티지 채널'을 구축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양한 스토리와 함께 고품질 영상 콘텐츠로 제작, 전 세계에 인터넷으로 보급하는 작업에 주력할 것이다. 글로벌시대에 맞는 우리 문화유산의 홍보가 필요하며 새로운 영상매체를 이용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단계적으로 이동방송(항공기, KTX), 유선방송(케이블, IPTV) 등에도 보급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화마를 입은 숭례문을 하루빨리 원상태로 복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부분까지 제 모습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숭례문이 다시 수도 서울의 관문이자 랜드마크로 그 위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
/mskang@fnnews.com 강문순기자
■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고고학자로 전공은 한반도 청동기 문화다. 한국 고대사의 태두로 꼽히는 이병도 박사(1896∼1989)의 손자이면서 이장무 서울대 총장의 동생이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근무를 시작으로 평생을 '박물관 맨'으로 살았다.
고고학자로서 전국의 발굴 현장을 누볐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과 국립광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면서 관리자로서의 능력도 검증받았다. 2003년 4월 개방직으로 전환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첫 수장이 된 이래 2006년 8월까지 첫 차관급 관장으로서 박물관 이전을 지휘했다. '문화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박물관대회 2004'를 아시아 최초로 유치해 한국 박물관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