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뮤지컬을 보는가에 대한 재미난 설문이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돌의 무대 나들이가 큰 유행이지만 물론 그것이 뮤지컬의 전부는 아니다. 상업 무대가 발달된 영미권의 뮤지컬 관객들은 배우보다 연출과 작곡가, 프로듀서 등 크리에이티브 팀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보 취득의 경로로는 주변인들의 입소문과 언론지상의 평점, 평론가의 칼럼 등이 높게 나타났다.
보다 구체적인 관극 동기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흥미롭게도 일탈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라는 대답이 많다.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 무대만의 환상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뮤지컬의 진짜 재미라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오프 브로드웨이 같은 소극장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선 이런 성향이 더 강했다.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늘 그저 그렇고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무대를 보려 비싼 티켓을 살 관객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무대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탈의 재미'는 엽기나 컬트라는 문화적 코드와도 밀접하다. W세대들의 용어처럼 '골 때리고', '황당하고', '4차원스런' 체험은 무대이니까 인정받고 무대여서 용서받을 수 있는 실험이 된다. 대리체험의 카타르시스나 가상현실의 자유를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공유하는 셈이다. 젊은 관객일수록 이런 작품에 더욱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는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온 대한민국의 뮤지컬계에서 모처럼 발견할 수 있는 '일탈의 재미'다. 사실 우리 공연가에서 뮤지컬은 연극의 한 지류로 치부되어온 경향이 있다. 극적인 완결성이나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여겨진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치어걸을 찾아서'는 이런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얽매이지 않는 형식은 극이라기보다 콘서트에 가깝고 직설적인 노랫말에는 풍자 코미디 같은 시원스러움이 담겨있다. 뮤지컬 '헤드윅'에서 발군의 가창력을 선보였던 송용진이 극작과 작사, 연출, 음악감독의 1인 4역으로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작품의 영향을 받은 느낌도 없지 않다. 다만 단순한 아류작이라기보다 우리식 접목을 이뤄낸 진화에 가까워 반갑다.
점잖게 앉아서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소리치고 고함지르며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묘미다. 미리 이름을 신청해두면 커튼콜에서 함께 노래로 '욕'을 선물(?)해주는 퍼포먼스도 색다르고 유명 가수의 히트곡에 '표절이야'라는 후렴구를 덧붙여 노래하는 발칙함도 신선하다.
꽉 짜인 스토리도 없고 현실성이나 개연성도 떨어지지만 작품이 추구하는 실험성과 열정에는 박수가 절로 나온다. 한바탕 소리 지르고 즐겁게 놀면서 스트레스를 날리자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느껴져 흥미롭다. 특히 작은 무대의 솔직한 재미를 알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할 요즘 우리 뮤지컬의 현주소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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