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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의 원스어폰어뮤지컬] 태양의 노래

서구식 인테리어가 주류인 뮤지컬 무대에서 일본 특유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세트는 신선했다. 주인공 카오루의 집은 은은한 분위기다. 대나무가 한쪽 벽면을 장식하는 2층 일본식 집. 이웃집 풍경도 정겹다. 격자무늬 창, 흘려 쓴 히라가나 문패…. 소품 하나하나가 흥미롭다. 하지만 새로운 무대에 대한 설렘이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는 게 흠이다.

서울시뮤지컬단이 만든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일본의 동명 소설과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색소성 건피증'을 앓고 있는 10대 소녀 카오루와 그녀의 남자 친구 코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소녀는 햇빛을 쬐면 시름시름 앓는다. 노래가 유일한 위로였던 소녀는 어느 날 사랑에 눈뜨기 시작하지만 그녀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소녀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2006년 출간된 덴카와 아야의 소설을 읽고 스물다섯 젊은 감독 고이즈미 노리히로는 그해 곧바로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카오루를 연기한 일본 신인 여가수 유이는 이 영화 한편으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뽀얀 피부의 유이가 보여준 연기도 훌륭했지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건 그녀가 작곡·작사해 직접 부른 주제가였다. 중독성 강한 'Goodbye days' 'Skyline' 'It's happyline'이 유이의 단아한 음색으로 퍼지면서 무수한 마니아를 낳았다.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이 영화 '태양의 노래'의 흥행 공식을 좇아가려는 흔적이 강하다. 소녀시대 출신 가수 태연을 주인공 카오루로 기용한 것부터 그렇다. 제작진은 태연이 유이 이상으로 흥행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사실 태연은 이런 제작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 전문배우들 틈에서 성량은 부족하고 위축된 연기를 보이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공연 전에 했지만 무대 위 태연은 당당했다. 자연스럽고 안정감 있는 연기와 노래가 오히려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이 작품이 생애 첫 뮤지컬이라는 '아이돌 스타' 태연에게만 지나치게 많은 짐을 부여하고 있는 느낌이다. 영화 '태양의 노래'를 받쳐줬던 탄탄한 스토리는 이 뮤지컬 버전에선 당최 힘을 쓰지 못했다. 코지와의 러브라인은 애틋하다기보다 뭔가에 쫓기는 듯 성급했고 카오루 아버지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하는 이웃집 아주머니는 난데없어 보였다.


진부한 대사, 밋밋한 연기, 건조한 음악이 무대를 더 지루하게 만든 건 아닌지. 전문배우들의 연기는 상투적인 대사에 연극적 느낌이 너무 많이 났다. 유이의 노래 세 곡은 태연이 무난히 소화해냈지만 나머지 다른 뮤지컬 넘버는 귀에 쏙쏙 박히지가 않았다. 태연만으로 이런 난국의 무대를 헤쳐나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뮤지컬이다.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