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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만드는 사람들]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

4월 말. 출근하기 직전 서울 삼성동 아파트 대문 앞에 가만 섰다.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몰리면서 정신적 피로감이 극에 달한 때였다. 문을 향해 왼손을 있는 힘껏 쳤다. 순간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꼈지만 정신은 갑자기 맑아졌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가 전치 6주 진단을 받고 깁스를 한 채 사무실로 향했다. 아침까지 복잡했던 머릿속이 한순간에 정리가 됐다.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이 그를 진정시켰다.

뮤지컬계 '열혈남아'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42). 지난달 말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제 막 깁스를 푼 팔을 만지며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빙그레 웃었다.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1990년대 후반 우연히 뮤지컬계 발을 디뎠고 2001년 오디뮤지컬컴퍼니를 설립한 뒤 10년째 '스타 프로듀서'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뮤지컬 제작자.

그는 작품을 쉴 새 없이 진행하는 다작의 명수다. 신 대표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드림걸즈'를 비롯, 뮤지컬계 스테디셀러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그리스' '올슉업' '나인'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이 오디의 대표 흥행작이다. 30대 초반에 '세계를 향한 문(Open the Door)'이라는 뜻의 오디뮤지컬컴퍼니를 설립해 이제 브로드웨이서도 'Mr. Shin'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는 앞만 보고 달리는 열정파 프로듀서.

하지만 너무 달려온 걸까. "작품 만드는 일에만 매달려 왔어요. 회사 조직 전반을 챙기지 못했어요. 하지만 조직이 안정되게 성장하려면 경영을 잘해야 하잖아요. 경영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고 있어요. 사실 작품 만드는 것보다 경영이 백배 힘들어요."

프로듀서 일과 효율적인 회사 경영. 이 고민을 한창 하면서도 그는 또 새로운 일을 벌였다. 에너지가 고갈됐다고 느낄 때 그가 주로 쓰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프로듀서가 아닌 연출이다. 2007년 '스텔링비'에 이어 3년 만에 하는 두번째 연출. 작품은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지난해 브로드웨이에서 공동프로듀싱한 뮤지컬로 그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이다. 프로듀서, 회사 최고경영자(CEO), 연출자 등 '1인 다역'이 순조롭게 정리되지 않으면서 한달 전 폭발했던 그는 이제 내달 13일부터 두달간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될 이 뮤지컬 연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따뜻한 내용이에요. 두 남자의 오랜 우정을 다룬 작품입니다. 담백하게 표현할 생각이에요. 이 뮤지컬을 보고 나서 인생에 소중한 게 뭔가를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면 성공입니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엄마여도 좋고 친구여도 좋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전화 한번 걸어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고 싶어요. 공연 내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지난 2006년 캐나다서 초연된 뒤 지난해 3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사실 현지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한 건 아니었다. 일단 당시 히트 트렌드에 맞지 않았다.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성한 극이 즐비한 상황에서 이 작품의 매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게 패인이었다고 신 대표는 분석한다. "무대도 많은 게 생략돼 상징물만 많은 세트가 돼버렸어요. 잔잔한 스토리도 이 때문에 잘 전해지지 않았죠. 국내 무대는 다르게 갈 겁니다. 무대를 더 사실적으로 꾸미고 드라마 전달에 많이 신경을 쓸 거예요. 대사도 편안하게 들릴 겁니다."

배우의 면면은 솔깃하다. 뮤지컬계 '섭외 1순위'로 꼽히는 류정한과 연기파 배우 이석준, 스크린과 브라운을 종횡무진하는 신성록, '신인 발굴 1인자'로 유명한 신 대표가 유망주로 지목하는 이창용, 이들 네명이 주인공이다.

이 뮤지컬 연출 다음 행보는 꿈에 그리던 영화감독의 길이다. 작업도 어느 정도 진행 중이다. 당초 내년 정도 작품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장르를 저예산 독립영화로 바꾸면서 시기가 빨라졌다. "시나리오는 공동작업으로 하고 있어요. 이르면 올해 안에 크랭크인 할 겁니다. 뮤지컬은 배우예술이라면 영화는 감독예술이에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주인공인 무대를 꿈꿨나 봐요. 배우로선 재능이 안되니까 무의식적으로 감독을 꿈꿨던 게 아닌가 합니다. 하하."

영화감독으로 잠시 외도할 계획이지만 그의 본업은 역시 프로듀서. 그의 마지막 꿈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일이다. 캐머런 매킨토시 같은 해외 스타 제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라이선스할 그날을 꿈꾼다.


"뮤지컬은 마술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신 대표. "배우들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이 배우들이 등장하는 순간 객석이 환호할 때 전 그런 생각을 해요. 뮤지컬은 정말 마술이구나. 관객에게 전 속으로 말해요. 이제 곧 마술이 시작됩니다. 마을을 열고 즐기세요." 스포츠모자를 눌러쓰고 소년 같은 웃음을 짓는 그는 꿈을 먹고 사는 프로듀서다.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사진설명=뮤지컬계 '열혈남아'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 '드림걸즈' '지킬 앤 하이드' 등을 흥행시키며 스타 프로듀서로 입지를 굳혀 온 그는 내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로 두번째 뮤지컬 연출에 나선다. /사진=서동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