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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목사 “한국사회,나 아닌 우리가 중심돼야”

▲ 이재철 목사는 국내 크리스천과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목회자로 손꼽힌다. 서울 합정동 양화진 100주년 기념교회 예배당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재철 목사. /사진=박범준기자
국내 크리스천과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목회자로 손꼽히는 이재철 목사(61).

이 목사가 살아온 길은 이채롭다. 모태신앙으로 성장했지만 처음부터 신학의 길로 들어선 건 아니다. 1971년 2월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한 뒤 유대인 종합상사에서 4년간 일했다. 여기서 배운 사업 노하우로 직접 회사를 차렸고 이 회사가 지금은 신앙서적만 출판하는 홍성사다. 당시엔 항공·운송·출판·미디어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엄청난 돈도 벌어들였다. 40평짜리 서울 반포아파트 분양가가 800만원이던 시절 이 목사는 하루에 1200만원을 벌었다. 이런 날이 한 달에 여덟 번가량은 됐으니 꿈만 같은 생활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꿈 같을 것 같은 이 생활이 이 목사에겐 즐거움을 주진 못했다. “삶의 의미를 못찾았으니까요. 그러니 방황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이 목사는 우연히 아내를 통해 자신의 삶의 돌아보게 된다. “단 한 번도 불만을 내색하지 않던 아내가 저에 대한 원망으로 눈물의 나날을 보낸 기록을 보면서 갑자기 깨달음이 왔어요.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구나 한 겁니다.” 사업가에서 돌연 신학의 길로 돌아선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신학과를 졸업한 뒤 목사가 됐고 교회를 개척했다. 이 교회가 서울 강남의 주님의 교회다. 출석 교인 수가 3000명을 훌쩍 넘는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됐지만 설립 초기 “10년만 몸담겠다”고 선언했던 그 약속을 지켜 1998년 사임했다. 그 뒤 스위스 제네바로 떠나 3년간 한인교회를 섬겼다. 2001년 다시 돌아와 맡은 일은 서울 충정로 산울교회 중고등부 교사였다.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 기념교회는 지난 2005년부터 몸담고 있다. 지금 이곳 양화진 100주년 기념교회는 주일마다 이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전주에서 상경하는 열혈 성도가 있을 정도로 내실 있게 성장했다.

국내 크리스천과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목회자로 손꼽히는 이재철 목사. 언론과 인터뷰를 안 하는 걸로도 유명한 이 목사가 파이낸셜뉴스 창간 10주년을 맞아 인터뷰에 응했다. 교회 홍보관 4층 집무실에서 만난 이 목사는 온유함이 몸에 배어 있다. 이 목사는 “한국 사회가 나를 중심으로 한 사고방식에서 우리 중심의 사고로 바뀌는 것이 가장 우선돼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창간 10주년인 파이낸셜뉴스는 기독교정신으로 창간됐습니다. 지난 10년간 파이낸셜뉴스를 지켜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파이낸셜뉴스를 보면 갈라디아서 6장 7절이 생각납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구절이에요. 기독교정신은 진실, 신실, 정직 이런 덕목을 말합니다. 파이낸셜뉴스는 초기부터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10년 동안 이렇게 알차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진실, 신실, 정직 이 기독교정신을 추구해온 결과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그런 정신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10년 뒤엔 또 다른 결실을 얻을 것이라고 봅니다.

―파이낸셜뉴스는 ‘모나지 않은 정론지’ ‘기업과 함께하는 경제지’ ‘기독교 정신이 배어 있는 지면 구성’을 목표로 제작해 왔습니다. 이윤 추구의 경제논리와 기독교 정신을 함께 다루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요. 이 두 주제가 궁극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스도 길 위에서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요. 최대, 최고, 과욕의 덫에만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기독교 정신은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 기업의 이윤추구와 기독 정신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추구하는 게 영원한 가치라는 걸 정확히 인식한다면 기업 논리의 단점을 기독교 정신이 보완해줄 수 있는 거죠.

―세계경제 침체에다 남북관계 대치 국면이 우리 경제에 큰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지도자나 국민이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또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우리 사회가 나를 중심으로 한 사고방식에서 우리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 많은 병폐 중 가장 근원이 되는 것이 개인주의라고 봅니다. 자기만 잘 되면 되는 거죠. 하지만 이 사회는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자기 혼자 잘 사는 길도 없습니다. 혼자 부를 누릴 수는 있겠지만 절대 편안한 생활은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세상이 편안해지려면 우리라는 의식이 강해져야 합니다. 공동체적인 사고를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죠. 이와 함께 국민 개개인이 자족을 알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을 익히는 방법은 신실·헌신·희생·행복 이런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이해하고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할 일이 많아요. 공동체 정신을 심어주고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100주년 기념교회는 선교사들이 묻힌 양화진에 세워졌는데요. 양화진은 우리나라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양화진의 법적 소유주는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1885년에 처음 들어왔잖아요. 1985년은 선교 100주년이 되던 해고 이때 한국교회 20개가 연합해 협의회를 발족했죠. 초대 이사장이 한경직 목사님, 2대 이사장이 강원룡 목사님이었어요. 초대 한경직 목사님은 그동안 방치된 묘역의 법적 소유주가 돼 기업인들 찬조금을 받아 여길 처음 정비했습니다. 1890년 묘지가 세워지고 100년 만에 정비가 된 거죠. 그러다 2005년에 이곳만을 관리할 목적으로 저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창립교회 목회를 맡아 달라고 했을 때 전 더이상 교회 목회 활동은 할 생각이 없었는데 목사님들 말씀을 듣고나서 따르기로 한 겁니다.

―목사님께선 최근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펴낸 이어령 박사 등 사회 저명 인사를 초청해 이곳 교회에서 목요강좌를 하고 있죠. 외부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목요강좌를 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우선은 교회의 신뢰회복에 일조하고 싶었습니다. 경제발전에 개신교가 기여했던 건 분명한 사실인데 그 부작용으로 교회가 물질주의에 빠져버렸어요. 70년대를 기점으로 뚜렷해진 게 교회가 양적인 부흥을 한 것과 동시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각자 처해있는 자리에서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양화진이라는 특수한 곳에 있잖아요. 선교가 금지돼 있던 시대에 교육·의료·문화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신뢰를 얻은 분들이었죠. 그분들처럼 문화라는 코드를 통해 교회와 세상이 소통할 수 있게 하자, 나아가 국민과 소통을 추진해보자, 이런 생각에 기획된 겁니다. 한평생 사회통합을 위해 모범적이셨던 분들을 모셔와 강의를 하게 했구요. 저희 자체 조사로는 3월 둘째주 시작해 3개월이 지났는데 홈페이지 동영상을 시청한 분이 6만명에 달해요. 강좌 참석자들을 보면 우리 교인이 50%, 타교인 30%, 무종교인이 10%예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봅니다.

―사업가로 굉장한 성공을 거뒀는데 돌연 서른일곱에 신학교에 들어갔지요. 갑자기 신학을 공부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지요. 최소한의 돈·건강·사람·가족 이런 것이죠. 하지만 이런 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고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의미의 발견이라고 봅니다. 등산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은 목숨 걸고 산을 올라가는 거죠. 제가 비즈니스를 할 때 돈버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지금은 비즈니스맨으로 남아있겠죠. 하지만 전 거기서 삶의 의미를 못찾았어요. 삶의 의미는 못찾고 돈은 많으니 타락의 길로 빠졌죠. 그러다 1984년 8월 2일 새벽 2시 아내가 저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아내 일기장을 통해 알게 됐을 때 제게 변화가 왔어요. 모태신앙으로 지식적으로만 알던 주님을 다시 만난 거죠. 꼭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신학을 택한 건 아니었는데 이쪽으로 인도받은 거라고 해야겠지요.

―목회 철학은 무엇인가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목회는 교인들과 더불어 사는 거다. 제 나름대로 그렇게 정리합니다. 더불어 살면서 목회자의 일은 주님의 사랑과 생명을 전해주는 통로로 규정하고 있어요. 저수지에 아무리 물이 많아도 우리집까지 파이프로 연결이 안되면 저수지의 물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려면 파이프가 있어야 하는데 그 파이프 역할을 제가 하는 겁니다. 이 파이프 역할을 하면서 제게 가장 소중한 가치관은 나 자신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는 겁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지만 목회자가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안에 있어요. 내 자신과 싸워 이기기 위해선 항상 내 자신이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의 통로가 될 수 있고 그 통로가 될 때에만 교인들에게 사랑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10년을 하루같이 보낸 파이낸셜뉴스가 앞으로 10년, 아니 100년을 내다보고 달려가려고 합니다. 파이낸셜뉴스에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대나무가 다른 나무에 비해 굵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나무가 강할 수 있는 건 일정한 길이 때마다 옆으로 매듭을 지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파이낸셜뉴스가 10주년을 맞는다는 게 10년의 매듭이 맺어진 거라고 봐야겠죠. 이 매듭의 의미는 지난날을 돌아보고 그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다지고 나아가자는 다짐 아니겠습니까. 이 매듭 위에서 지난 10년처럼 진실·신실·정직 이런 가치관을 덕목으로 가지고 나아간다면 지난 10년보다 더 알찬 10년이 될 거라고 봅니다. 신실한 분들이 기업논리와 기독교 정신을 병행하며 숭고한 가치를 추구한다면 독자로부터 더욱 신뢰받는 신문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신뢰가 가장 큰 재산입니다.

/jins@fnnews.com최진숙기자

■이재철 목사약력 △61세 △부산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장로회 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주님의 교회 담임목사(88∼98년) △스위스 제네바 한인교회 담임목사(98∼2001년)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 기념교회 담임 목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