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중국 윈난,시간이 멈춘 원시속으로] (上) 25개 소수민족의 고향

▲ 중국 윈난성 다리에서 멀지 않은 웨이산이족회족자치현에 가면 시간이 멈춘 듯한 이슬람 마을이 있다. 오른쪽 불교 사찰처럼 보이는 게 마을에서 가장 큰 모스크 건물이다.

【윈난(중국)=곽인찬기자】광속으로 질주하는 디지털 스트레스에 몹시 시달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중국 윈난(雲南)으로 가라. 24시간 당신을 옭아매는 업무의 중압감에서 탈출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윈난성 샹그릴라를 찾아 뭉게구름 아래 너른 초원에 두 팔 활짝 펴고 누워 보라. 윈난은 시간이 멈춘 곳이다. 문명 이전의 신비한 세상을 체험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화석이며 초대형 박물관이다.

윈난엔 25개 소수민족들이 모여산다. 중국 전체 소수민족의 절반 가까운 숫자다. 그중 일부는 한국인과 구별하기 힘들 만큼 빼닮았다. 시골 할머니들은 그대로 우리네 시골 할머니들이며 코때 묻은 어린이들은 수십년 전 우리 어린이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먹기 좋을 만큼 새콤하게 익은 김치도 있다. 이번 여정을 같이한 동료들끼리 가장 자주 주고 받은 말은 "남의 나라에 온 것 같지 않다"는 감탄사였다. 좀 과장하면 이번 여행은 데자뷔 즉 기시감(旣視感)을 현장에서 하나하나 짚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랬다. 윈난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4시간 남짓 걸리는 먼 거리에 있지만 물리적 거리가 반드시 정서적 거리와 비례하진 않았다. 오히려 둘 사이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하는 듯하다. 마치 옆 동네에 놀러간 듯한 친근감을 느꼈다면 바깥 바람에 맘이 들뜬 나그네의 허풍일까.

윈난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차와 말을 사고 팔기 위해 목숨 걸고 티베트 라싸까지 오가던 차마고도(茶馬古道)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최대 관광지 리장(麗江)에 사는 나시(納西)족은 지금도 상형문자 동파문(東巴文)을 쓴다. 상형문자에 뿌리를 둔 한자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의 간자체에 이른 반면 동파문은 옛 모습 그대로다. 천년을 넘게 이어온 고악(古樂)도 꾸준히 명맥을 잇고 있다.

윈난은 화해와 포용이 넘치는 곳이다. 25개 소수민족이 뒤섞여 살지만 아귀다툼은 없다. 백족(白族)은 본주사당에서, 회족(回族)은 모스크에서, 나시족은 동파교 만신원에서 각자 신앙의 자유를 누린다. 도교와 불교, 전통종교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 가이드를 자임한 한국학연구소의 박현 소장은 "윈난 소수민족의 언어에는 '그러나' '아니오'라는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 대신 "남의 것을 아껴주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곳곳에 흩어진 소수민족 마을을 하나로 이어주던 차마고도는 화해의 통로가 됐다.

윈난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이다.

히말라야 자락에 위치한 윈난 땅엔 옥룡설산·매리설산 등 고산준령이 즐비하다. 지프나 자전거를 타고 윈난 곳곳을 누비는 배낭족도 흔히 눈에 띈다. 이번 여행은 아쉽지만 문화유산을 훑어보는 데 그쳤다. 자연탐방은 즐거운 숙제로 남겨두고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 속으로 들어가 보자.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