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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이사람]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떠나는 강효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강효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65)의 트레이드마크는 ‘온화한 미소’다. 강 교수는 항상 미소 짓는 얼굴이다. 이 미소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아내 이야기를 할 때면 이내 함박웃음으로 번진다. 세계 어디를 가든 가는 곳마다 강 교수는 아내와 함께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못 말리는 애처가’다.

큰 욕심 없이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지만 기회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서울대 음대 2학년 때다. 한국에 온 바이올리니스트 벌 세노프스키가 그의 연주를 듣고 깜짝 초대를 했다.

“연주 비용을 댈 테니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음악축제에 와 달라는 거예요. 그때가 60년대 초반인데 혼자 힘으로 갈 형편은 안됐거든요.” 김포공항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들어갔고 다시 하와이를 경유해 로스앤젤레스로 들어가 음악축제에 참여했다. 이곳에서의 연주로 그는 다시 뉴욕행 비행기를 탔고 곧바로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한다. 한동일, 정경화, 백건우 등 쟁쟁한 연주자들이 당시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문들.

하지만 이들과 달리 그는 화려한 연주자의 길이 아닌 가르치는 삶을 선택했다. 1985년 한국인 최초로 줄리아드 음악원 정교수가 됐다. 장영주, 길 샤함 등이 그를 거쳐간 바이올리니스트들.

뉴욕에서의 그의 일상은 반은 줄리아드, 반은 예일대로 나뉜다.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예일대 근처 아파트에서 일주일중 사흘을 보낸다. 그는 현재 예일대 음대 교수도 겸직하고 있다.

줄리아드, 예일대 교수 직함 외에 그가 7년째 가지고 있는 타이틀이 대관령 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이다. 이제 명실상부한 국제 음악제로 자리 잡은 이 축제엔 강효 교수의 땀과 노고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강효 교수는 미국 유학시절인 70년대 중반 미국의 세계적인 실내악축제 ‘아스펜음악제’를 보며 이 같은 축제가 국내에서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한다.

“이 축제로 아스팔트도 깔리지 않은 시골 마을이 유명해지고, 그 무대에 섰던 제자들이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하는 걸 보며 정말 부러웠어요.”

2000년대 초반 강원도 평창에서 이와 유사한 축제를 만들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만사를 제치고 합류했다. 2004년 처음 시작된 대관령국제음악제와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맺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여름 방학을 통째로 이 음악제에 쏟아 부었다. 세계적인 연주자들, 명교수들의 초청으로 음악제는 위상이 날로 높아졌다. 지난해까지 관람객 20만명, 연주자 265명이 다녀갔다. 음악제 경제유발효과가 140여억원에 달한다는 전문기관의 분석도 나왔다.

7년간 대관령음악제 기초를 닦았던 강효 교수는 이번 7회 음악제를 끝으로 예술감독을 떠난다.
“2년 전부터 생각해왔어요. 대관령 음악제는 역사가 짧아 그동안 감독교체가 없었는데 이제는 적절한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 겁니다.앞으로 뒤에서 조용히 도와야죠.”

강 교수는 공부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삶만 살아온 탓에 놓치고 산 세상공부를 두루 해보고 싶다는 것. “여유를 갖고 다양한 분야를 새롭게 공부하고 싶어요. 또 제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세종솔로이스츠의 국제활동에도 더 주력할 겁니다.”

/jins@fnnews.com최진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