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화재의 책] 비릿한 바다 냄새가 물씬 ‘21세기형 자산어보’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한창훈/문학동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삐 흘러가는 일상사. 생활에 지칠 때면 도시의 샐러리맨들은 상상한다. ‘바다낚시를 해서 잡은 생선으로 저녁을 짓고, 가끔 글이나 쓰면서 평화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남자가 있다. 그러나 그의 하루는 도시인의 상상과는 달리 그다지 낭만적이지는 않다. 문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낚시를 하는 남자는 스스로를 ‘생계형 낚시꾼’이라 부른다. 그 남자가 그동안 잡아 올린 해산물에 관한 책을 썼다. 갈치, 고등어, 꽁치, 문어, 볼락, 삼치, 홍합…. 펄떡이는 생명력으로 물이 오른 저녁밥상. 그것은 남자의 밥이자 생활이자 인생이었다.

작가 한창훈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문도에서 태어났다. 걸쭉한 남도 입담으로 바다와 섬의 이야기를 써온 작가. 그러나 수권의 책을 펴낸 지금도 그는 식자 든 사람으로서 바다를 구경하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부와 해녀들 사이에 섞여 몸으로 바다를 살아내고 있다. 그런 그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바다의 기억과 낚시생활 40년 노하우를 엮어 ‘21세기형 자산어보’를 완성했다.

잘 알려졌듯이 ‘자산어보’는 조선시대 정약전이 유배지 흑산도에서 펴낸 책이다. 유배지 생활의 적막함을 잊어보려는 듯 정약전은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이리저리 헤집어보며 관찰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자산어보’다. 그로부터 200년 후 작가 한창훈은 고향 거문도로 돌아와 그만의 ‘자산어보’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비린내 풍기는 ‘갯것’들을 맛깔나게 먹는 법, 잡는 법, 다루는 법과 함께 섬사람들의 애틋한 삶의 면면까지 녹여냈다.

도시인의 눈에는 온통 신기한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어 섬사람의 회 먹는 방법을 소개하는 대목이 눈에 띄는데, ‘회로 배가 불러야 한다’는 것이 섬사람의 기본 방침이어서 회는 일단 수북이 쌓아놓고 먹는단다. 도시 횟집처럼 얇게 저며놓고 친구 부르면 욕먹기 십상이라나. 또 섬에서는 회를 조선간장, 마늘, 설탕, 고춧가루, 생강, 깨로 만든 양념장과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치고 그 다음이 묵은 김치나 고추냉이 간장을 곁들여 먹는 것이라고. 도시인들처럼 초고추장에 먹겠다면 구박받을 각오를 해야 한단다. 생선 눈알은 또 어떤가. 생선 눈알 맛있는 건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안타까운 진실이다. 해산물들의 비화 또한 재미있다. 제 다리를 잘라 먹고 사는 문어라든지, 립스틱의 주재료가 갈치 비늘의 구아닌 성분이라든지, 도시인은 몰랐던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샐러리맨을 가장 설레게 하는 대목은 바로 밤낚시다. 작가는 밤낚시를 이렇게 소개한다.

밤낚시의 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들 돌아올 때 찾아가는 역행의 맛이 있고 모든 소음을 쓸어낸 적막의 맛도 있다. 넓은 바닷가에서 홀로 불 밝히는 맛도 있고, 달빛을 머플러처럼 걸치고 텅 빈 마을길 걸어 돌아가는 맛도 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회 떠놓고 한잔 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밤에 하는 짓이 몇 가지 되는데 가장 훌륭한 게 이 짓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맛보고 싶은 바다 내음. 팍팍하고 건조한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을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빠져들게 하는 그것. 바다, 바다, 바다.
작가가 직접 서툰 솜씨로 찍은 생선 사진과 거칠고 투박한 글. 그 안에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있다. 눈물처럼 짭조름한 소금 맛이 배어 있다. 바로 인생의 맛이다.

/이지영 예스24 도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