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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로 느끼는 러시아…보로딘 대작 ‘프린스 이고르’

【방콕=최진숙기자】요즘 태국 방콕은 춤과 음악으로 연일 축제의 밤이다. ‘방콕 국제 댄스&뮤직 페스티벌’이 시작되던 지난 11일 오후 7시 방콕의 랏차다지역 중심가 타이문화센터. 개막작으로 무대 오른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발레오페라극장의 오페라 ‘프린스 이고르’를 보기 위해 방콕의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들이 총출동했다. 방콕 거주 외국인들과 태국 클래식 애호가들이 2500석 객석을 가득 메우며 열기를 뿜어냈다. 이중에는 태국 왕실 서열 3위 공주 마하 짝끄리 시린턴도 끼어 있었다. 2층 가운데 첫째줄에 앉은 그녀는 무대 오른 배우들 만큼이나 관객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로 12회째인 이 페스티벌을 시린턴 공주는 지난 2008년부터 공식 후원하고 있다. 내달 24일 주빈 메타의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은 이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

올해 러시아 골든 마스크상 4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된 노보시비르스크의 오페라 ‘프린스 이고르’는 러시아 건국기인 12세기 노르고로도의 공작 이고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남방 초원지대의 유목 민족 타타르족을 정벌하려다 포로로 잡힌 뒤 탈출하는 이고르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들이 주 내용이다. 작곡가 보로딘이 러시아 서사문학에 나온 이고르 원정기와 승원문서 이파테프스키 연대기를 바탕으로 대본과 곡을 썼다. 대본은 친구 블라디미르 스타소프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지만 곡은 미처 끝내기도 전에 숨을 거둬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에 속하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에 의해 마무리됐다. 초연은 1890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이날 무대는 15분짜리 프롤로그와 3막으로 진행됐다. 드라마틱한 줄거리에 러시아 민속음악과 교회음악의 선율이 교묘하게 어우러졌다.

이고르역을 맡은 바리톤 로만 부르덴코는 중후한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최고 하이라이트는 2막 ‘플로베츠인의 춤’. 포로로 잡혀 침울한 생활을 보내는 이고르를 위로하기 위해 타타르 콘차크 추장이 마련한 가무 잔치다. 강렬한 색감의 무대를 배경으로 40여명 무용수는 역동적인 춤과 에너지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이국적 정취가 가득한 여성합창 ‘바람의 날개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중독성이 강한 멜로디다. 국내 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돼 친숙한 이 러시아 음악을 러시아 합창단의 음색으로 맛보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지휘를 맡은 예브게니 볼린스키 노보시비르스크 극장 음악 감독은 “대규모 합창과 발레의 조합이 러시아 오페라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구성”이라며 “러시아의 역사와 정서를 대표할만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박물관에 걸린 그림 같은 평면적인 작품이 아니다”며 “부부,부모와 자식,그리고 민족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 인간 보편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러시아 사람이 아닌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보시비르스크 극장의 30대 패기만만 극장장 루슬란 에프레모프는 “러시아의 역사적 아픔과 전쟁에서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강인한 힘과 진실,그리고 미래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라며 “다른 러시아 오페라와 달리 프린스 이고르는 러시아 국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오페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65년 역사의 노보시비르스크 극장은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과 더불어 러시아 3대 오페라발레극장으로 꼽힌다. 루슬란 에프레모프는 “러시아를 알려면 수도(現 모스크바, 舊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보지 말고 지방을 보라는 말이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노보시비르스크 극장은 러시아를 더 잘 보여줄 것”이라며 웃었다.

노보시비르스크 극장의 러시아 오페라 ‘프린스 이고르’는 내달 한국 관객들과도 만난다. CBS 주최로 내달 7일부터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하우스에서 성악가와합창단, 발레단, 오케스트라 등 모두 250여명이 무대 오를 예정.

/jin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