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요리사가 말했다. “제 아내는 저에게 밥 차려주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해요.” 이해할 만하다. 전문가 앞에서 아마추어는 소심해지기 마련이니까.
비슷한 이유로 그날따라 옷장 앞에 서서 한참 고민했다. ‘뭘 입어야 할까’ 같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상해 보이진 않아야 할 텐데’란 걱정 탓이었다. 아마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디자이너를, 그것도 국내 톱 디자이너를 2명이나 만나야 한다면 말이다.
■서울패션위크 10주년 헌정 나란히 출품
“꼭 아파서 그런 건 아니에요.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들이 저를 괴롭혀서 그렇지요.”
디자이너 이상봉은 종종 잠기는 목소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날 비를 쫄딱 맞아가며 ‘강남 패션 페스티벌’ 리허설을 한 탓에 감기 기운이 있어 보였지만 그는 애써 밝은 어조를 유지했다.
이제 막 파리 컬렉션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겐 휴식시간이 전혀 없었다. ‘강남 패션 페스티벌’ 쇼는 물론 오는 25일 열리는 ‘서울패션위크 10주년 기념 헌정 전시회’도 준비해야 한다.
국내 톱 디자이너 10명이 참가하는 이 전시회에는 지춘희, 이상봉, 우영미, 이영희, 정욱준, 박춘무, 손정완, 문영희, 장광효, 김석원 디자이너가 참여한다. 여성복과 남성복으로 나누면 7대 3, 각각의 디자이너는 최소 1점, 많게는 3점의 옷을 선보인다. 이전에 만든 작품을 내놓아도 좋고 새로 만들어도 좋지만 자신의 디자이너 인생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어야 하니 어느 쪽도 쉽진 않다.
“부담스럽죠. 하지만 제 디자이너 인생에서 한번쯤 이렇게 정리를 하고 가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디자이너 장광효는 새로운 옷을 만드는 길을 택했다. 그 역시 각종 컬렉션과 아마추어 디자이너 심사, 패션쇼 등으로 숨을 돌릴 틈이 없다.
“디자이너가 된 뒤 한번도 거르지 않고 1년에 두 번씩 컬렉션을 했어요. 통상 3년마다 한 해는 쉬는데. 왜 그러냐구요. 한시라도 일을 놓으면 다음 번에는 잘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
실력과 명성을 함께 갖춘 그를 찾는 곳은 여전히 많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되도록 많은 행사에 참여하려 한다는 그는 “언론의 힘을 얻어 반짝 인기를 얻더라도 내공이 없으면 1년도 못 돼 사라지는 게 패션계”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중의 힘이 원천이다
이상봉과 장광효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디자이너다. 이상봉은 한글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로, 장광효는 국내 1호 남성복 디자이너로 유명하지만 패션계와 동떨어진 이들에게까지 이름과 얼굴을 알린 것은 텔레비전의 공이다.
이상봉은 2006년 11월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패션쇼 도전을 돕고 또 지휘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함께 일을 해왔던 스태프들이나 주변 사람들 모두 하지 말라고 했어요. 반발이 심했죠.”
결과적으로 이 일은 이상봉을 ‘국민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민머리에 동그란 뿔테. 특유의 개성 있는 외모는 전파를 타고 모든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갖은 우려 속에 도전한 일이었지만 파급력은 엄청났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그를 보며 반가워했고 더불어 이상봉 브랜드 인지도도 급상승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틀을 깨야 해요. 자기 작품에 갇혀서 자기 고집대로만 해선 안되고 뭔가 좀 보여주고 공개하면서 커 나가는 거죠. 저도 처음엔 매우 폐쇄적인 디자이너였어요.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작품세계를 공유하는 법을 배웠죠. 사진도 찍어가고 다 퍼가라. 저는 이거예요. 인터넷이 이렇게 발달된 세상에서 어떻게 막나요. 이상봉이 만든 문화를 널리 널리 즐기라고 풀어주는 수밖에요.”
장광효는 이런 면에서 한발 더 나갔다. 그는 연기에 도전한, 그것도 코믹 시트콤에 출연한 최초의 디자이너다. 2005년 안녕 프란체스카에 ‘장쌤’으로 출연한 그의 행보는 대중에겐 호기심을, 업계에는 충격을 몰고 왔다.
엉뚱한 캐릭터로 등장해 큰 웃음을 선사한 그는 이후 도무지 관리하지 못할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가 유명 디자이너란 사실에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업계의 시선은 묘했다. 한편으로는 시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분위기는 그랬다.
이 프로그램은 그가 운영하는 ‘카루소’ 브랜드의 매출에도 큰 도움을 줬다. ‘카루소’를 널리 알린 덕에 판매가 급증했다.
“디자이너라면 뭔가 좀 이상하고 기인일 것 같고 그런 이미지가 팽배해요. 자존심 센 별종들, 고집불통. 그 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대중의 사랑이 뭔지, 그것이 결코 예술가의 자존심과 상충되지 않음을 알게 되는 거죠.”
그가 직접 만드는 슈트는 한벌에 300만원가량.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10만원 내외로 장광효의 이름을 단 옷을 구입할 수 있다. 그는 “다양한 경로로 대중과 만나고 싶다”면서 “연예인이 아닌 누구라도 장광효의 옷을 부담없이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마케팅은 ‘NO!’
디자이너 이상봉의 방엔 김연아 선수의 대형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서 이 디자이너는 김연아의 신체 사이즈를 재고 있었다. 둘의 관계도 역시 옷에서 시작됐다. 지난해와 올해 ‘페스타온아이스’에서 이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김연아가 지난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댓스케이트 LA 아이스쇼’의 의상도 부탁한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김연아의 아이스쇼가 열리는 날과 이 디자이너가 ‘파리 컬렉션’에 참가해야 하는 날(지난 1일)이 비슷했다. 통상 컬렉션을 앞둔 디자이너들은 식사 약속조차 잡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데 이 디자이너는 결국 두 가지 일을 한번에 해냈다.
“정말 빠듯했어요. 하지만 당시 김연아 선수가 코치 문제로 굉장히 힘들 시기였어요. 어떻게든 힘이 돼주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이에 김연아는 감사의 뜻을 동영상으로 전했다. 이 동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전격 공개됐고 둘의 인연은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디자이너 장광효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연예인의 역사일 정도로 화려하다. 소방차의 승마바지를 비롯해 서태지의 ‘하여가’ 패션, 개그맨 임하룡이 입던 옷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연예인들이 총출동하는 오락프로그램을 보면 90%가 그의 옷을 입고 나올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가수 조용필과의 인연이다.
“그 당시 조용필은 지금 어떤 가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빅 스타’였어요. 수많은 연예인의 옷을 지어봤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조용필의 옷을 한번 지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는 꿈꾸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직도 기억나요. 어떤 날 가게 앞에 외제차 한 대가 와서 서더라구요. 조용필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왔어요. ‘방송국에서 옷 잘한다고 소문나서 왔다’면서. 그냥 5분간은 기절해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던 조용필은 종종 그에게 일본 잡지와 패션서적을 사다줬다. 모두 한번도 보지 못했던 진귀한 것들이었다. 조용필의 꼼꼼한 안목도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엔 제 옷의 어디가 어떻다며 지적할 때 기분이 나빴어요. 결국 그게 맞는 말인데도요. 톱가수 특유의 세심한 안목과 꼼꼼함이 제 실력을 한껏 키워놨다고 봅니다.”
■“주말마다 옷 구경해보라..곧 감이 온다”
▲이상봉〓누구나 패셔니스타를 꿈꾸지만 현실적으로는 제약이 많다.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그렇고 센스가 부족하거나 용기가 없는 것도 큰 이유다. 이 중 가장 먼저 갖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용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스타일이 있다면 남의 이목을 신경쓰지 말고 도전해 보라. 일단 용기만 가지면 그 다음은 센스다. 센스를 갖추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많이 구경하고 많이 입어봐야 한다. 그 옷을 다 어떻게 사냐고? 옷을 살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만큼 옷 구경하기 좋은 나라는 없다. 주말마다 백화점에 가서 어떤 옷이 있는지 마음껏 구경하고 입어보라. 어울리면 찜해 두고 안 어울리면 다른 아이템을 찾으면 된다. 그렇게 몇 개월을 하다 보면 그때부터는 감이 온다. 돈은 가장 나중 문제다.
▲장광효〓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 것은 걸쳐도 소용없다. 또 남들이 예쁘다 해도 본인이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면 그것 또한 아름답지 않다. 결론은 편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마다 옷을 입는 행위 자체가 패션이다. 그 일을 매일 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어려워서도 안 된다. 디자이너들이 옷을 잘 챙겨 입을 것 같지만 스스로 옷 제조기가 돼 버렸다고 느낀 이상 오히려 수수하고 편하게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단 하나 꼴불견으로 보이는 것은 멋을 내겠다는 욕심에 명품으로 휘감는 것이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볼 때 명품 브랜드의 절반은 제값을 하지만, 또 나머지 절반은 거품이다.
/wild@fnnews.com박하나기자
*이상봉 디자이너는 나이를 밝히지 않는 걸로 유명합니다. 무조건 37세라고 하는데 실제론 50이상. 균형을 맞추기위해 장광효 디자이너 역시 나이를 빼겠습니다.
■이상봉 의상디자이너 약력 △브랜드 이상봉 대표 △1985년 ㈜Liesangbong paris 설립 △1994∼2010 서울패션위크 참가 △2002∼2010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참가 △2006 한불 120주년 기념 패션쇼 참가 △2007 환경재단 홍보대사 △2008 서울시 홍보대사 △2008 서울 디자인올림픽 홍보대사 △2008∼2010 한글 홍보대사 △2009 '올해의 디자이너' 대통령 표창 △2010 뮤지컬 선덕여왕 무대의상 제작 △2010 한국 러시아 수교 20주년 기념 모스크바 패션쇼 참가 △2010 페스타 온 아이스, 김연아 및 출전선수 의상 디자인
■장광효 의상디자이너 약력 △브랜드 카르소 대표 △1984∼1987 삼성 제일모직, 캠브리지, 논노 수석디자이너 △1985∼2001 국민대·한성대·경희대 겸임교수 △1987 카루소 설립 △1992 SFAA 서울컬렉션 참가(현재까지 매년 2회 참가 중) △1994∼1996 국내 최초 파리 남성복 컬렉션 6회 참가 △2003 한국 패션브랜드 대상 수상 △2005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기) 승무원 유니폼 디자인 △2007 한국 섬유·패션대상 수상 △2008 에세이 '장광효, 세상에 감성을 입히다' (북하우스) 출간 △2009 이랜드그룹 '스파오 by 장광효' 컬래버레이션 라인 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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