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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전 두바이아트페어에서 솔드아웃하며 화제를 모았던 ‘황금 큐브’채은미 작가가 오는 12월 1일 4년만에 ‘The shining’(광채)를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
달항아리가 금박큐브들과 연결되면서 또 하나의 시각적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가로 2m 세로 2m 크기의 작품에서 뿜어져나오는 금빛 진동들은 내면을 이끌어내며 영혼의 울림까지 전달하는 듯하다.
자개로 뒤덮인 달항아리, 수없이 많은 금박 큐브는 ‘채우고 비움’을 거듭한다. 그의 작품은 보는이에 따라 달라지는 몸짓, 흔적, 우리의 눈을 가로지르는 내면의 정적까지를 담아낸 확실한 거울이다.
‘황금 큐브’ 작가 채은미(42)의 대형 작품 ‘샤론의 꽃’은 단지 보기만 해도 폭발적인 압도감에 숨이 막힌다. 황금빛을 쏟아내는 금박큐브는 총 3780개. 신경세포같은 연결망처럼 이어진 큐브는 금을 입힌게 아니라 순도 99.9%의 금을 도금했다. 큐브안에서 영롱하게 존재감을 발산하는 항아리는 0,1mm두께 자개를 하나하나 이어붙여 만들었다.
작가는 “항아리를 사람의 그릇, 마음의 깊이를, 그릇은 채움이기도 하고 채워있는 것을 비우기도한 공간적 미학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항아리안에 담긴 백합꽃은 간절한 소망의 열매와 향기를 뜻한다. 험난하고 메마른 광야에서 고통을 이기고 피어나는 샤론의 꽃을 보고 사람들이 기뻐하고 향기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작가의 작품은 반복과 반복, 수많은 손작업을 통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축적해냈다. 무한한 반복 작업,“내 자신을 비우고 내려 놓기를 수없이 했다”며 그는 “과정은 고통이지만,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오는 12월 1일 서울 삼청동 fnart스페이스에서 4년만의 개인전을 앞두고 마무리에 한창인 작가를 지난 23일 작품사진 촬영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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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hining 1,2,3 Mother of pearl on cell painting & resin 자개 위에 셀 페인팅, 레진/ 51cm×51cm×3cm 2010. |
■자개 항아리꽃…고통속에 핀 꽃
“제 작품은 시작할때부터 끝날때까지 힘든 것 같아요. 자개의 빛과 금박큐브 빛 때문에 사진촬영하는 것도 만만치 않거든요.”
밤 9시가 넘은 시간. 어둠이 내려온 창문을 검은 커텐으로 친 전시장안에서 작가는 쇼파에 기대챈 작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촬영을 위해 천안(작업실)에서 3시간을 달려왔다. 밥도 먹는둥 마는둥 자개와 큐브에 빠져 지낸 지난 4개월의 대장정이 마무리된 순간이다.
이튿날 밤을 새고 30분 쪽잠을 자고 올라왔다는 작가는 마른 종잇장처럼 파리했다. 질끈 묶은 머리, 창백한 얼굴, 입술은 터져 딱지가 앉았다. 그는 한 작품이 사진에 담길때마다 사진작가 뒤에서 호기심많은 구경꾼처럼 자신의 작품을 쏘아봤다.
자개로 만든 달항아리는 뽐내듯 영롱한 빛을 반사했다. 하지만 작가는 “아직 덜됐다”며 “옻칠도 더 해야하고 사인도 해야 해서 다시 작품을 싸들고 천안으로 내려가야한다”면서 왼쪽 손을 자꾸 주물렀다.
성냥꼴처럼 가느다랗고 흰 손가락. 약지손가락이 힘없이 축 늘어져있다. “작품을 앉아서 오래 하다보니까 왼손이 마비가 왔어요”. 손 작업을 많이하는 작가들의 천형이라고 했다.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해서 많이 나아졌다”며 활짝 웃어보이는 그는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작업만 했다”고 말했다.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붙이고 문지르기를 수백번 수천번…. 작품이 잘 나오는지 기대하고 인내하고 기다림속에 탄생된 작품은 “좋다”는 마음이 들면 고통은 사라졌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의 순환. “뇌가 없는 사람같다”는 생각도 했다.
판단과 감각사이의 외줄타기. 자신과의 싸움, 아무리 힘들어도 “중심이 서있으면 아무리 어떤게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일 1m,2m 큐브 대형작품에서 이조시대민화를 바탕으로한 자개작품 소품까지 30여점은 어느새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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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80개의 금박큐브와 0.1mm 두께의 자개를 이어붙여 만든 항아리가 존재감을 발산하는 작품 2m×2m크기의 ‘샤론의 꽃’. |
■‘금박 큐브’ 두바이서 인기몰이
작가는 2002년 금호미술관에서 ‘금박 회화’를 발표했다. 당시 작품은 달항아리가 있는 지금의 형상의 바탕과는 달리 오방색위주로 색면만 있었다. 전통보자기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후 사출방식으로 도금된 큐브가 화면에 올라왔다. 순수한 황금색과 오방색이 격자무늬처럼 엇갈려 다양한 효과를 창출했다. 볼록하면서도 매끈한 표면의 큐브들이 이어져 미니멀아트를 연상시키고 화면의 상하좌우 또는 대각선으로 흐르는 색면의 바탕위에 놓여진 큐브들로 인해 변하는 색과 빛의 반향들은 옵티컬 아트의 한 국면을 상기시킨다는 평을 받았다.
‘황금의 연금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일본 유학(동경예술대학 미술연구과)시절 순금에 매료됐어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색채에 빠졌지요. 어느날 지도교수 심부름을 갔는데 다다미방에서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무릎을 끓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묘하게도 그 장면 자체가 신성하게 보이는겁니다. 몰두해있는 남자를 보니 금을 붙이고 있더군요. 그때부터 금에 흥미를 갖기시작했고 4년후 졸업할때쯤 금박을 사용한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금색 회화’는 ‘금박 큐브’로 발전했다. “어느날 화장하고 있는데 금박 화장품케이스가 예쁘더군요.이걸 작품에 옮겨보면 어떨까”는 생각은 큐브의 형상을 도안하게 됐고 금형을 만들어서 제작을 하게됐다. 평범했던 ‘금색 회화’는 큐브가 올라가면서 세련되고 현대적인 작품으로 탈바꿈했다.
‘금색 큐브’는 2006년 자개와 만나 더욱 섬세한 빛을 발산했다. 작업이 변한 것이 아니다.
“실재 소재들이 우연히 일상적인 생활에서 찾아지게 됐어요. 금을 사용하다보니 금박 접착제로 옻을 쓰고 옻은 자개랑 접목이 되고 연결고리가 이어진 연속성으로 이뤄진 작업입니다.”
빛나는 작품은 자신을 불태워야 나왔다. 금박에 옻칠은 가려움증과 대치했고 가려움증을 가라앉히려 옻을 환으로 만들어 계란노른자속에 집어넣어서 먹었다. 자개위에 색칠도 쉽지 않았다. 유성안료와 코팅재료를 섞어 몇겹씩 올려야 겨우 색이 나왔다.색감을 입히려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지문이 닳아없어졌다. 그렇게 직조해낸 작품은 2008년 두바이아트페어에서 금빛향연의 종을 울렸다. 1m 1m크기 출품작 9점이 매진됐다. 작업한지 14년, ‘채은미’라는 이름이 미술시장에서 떠오른 순간이다.
“저는 계단을 넘어가도 두계단을 넘어본적이 없어요. 한계단도 다지고 다져 또 한계단을 올라가는 그런 스타일입니다.어렸을때부터 화가가 꿈이였고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내길을 걸어왔어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 매달려 고집이 세다고 합니다.”
코스모스처럼 가느다란 모습과 달리 질긴 근성의 작가는 “예술은 내면의 열정을 이끄는 힘”이라고 말했다. 연약해보이면서도 강인한 작가와 화려하면서도 단단해보이는 작품은 영락없이 닮았다.
다른 물질과 결합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금은 영원함의 상징. 보는 것 못지 않게 느끼게 해주는 금박큐브는 불멸의 영원성을 담았다. 시시각각 변하지만 비움의 무한함과 비워짐으로 인한 충만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불안은 자본주의 감정이다.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후 금값이 뛰고 있는 이유도 새로운 불안의 자극이다. 금빛 진동을 놀라운 밀도로 응축한 ‘황금 큐브’ 작가 채은미의 작품이 더욱 빛나고 있다. 전시는 12월 1∼15일까지.(02)725-7114
/hyun@fnnews.com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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