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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 수습일기] 새로운 해, 새롭지 않은 오늘


눈을 뜬다. 아침이다. 늘 일어나는 그 시간 그대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쥐고 부재 중 문자와 전화를 확인한다. 졸음을 깨우기 위해 씻고 아침을 먹고 하루의 일과를 점검한다. 익숙한 풍경이다. 시계를 보면 시간은 여전히 째깍째깍 무심히 흘러가고 있고 새 달력의 채 가지 않은 빳빳한 종이 냄새만이 오늘이 2011년의 첫 날임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이러면 안될 것 같은데, 첫 날엔 뭔가 변해야하는데.

작년 마지막 날이 생각난다. 한 해를 돌아본다고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에 끼적이고 있자니 <한 해 돌아보기>가 아니라 <올해의 아쉬웠던 일 베스트 10>이다. 새로 구입한 다이어리의 첫 장에도 역시 작년의 아쉬웠던 일을 오롯이 넘겨받아 <올해 이루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 빼곡히 적혀있다. 분명 행복하고 만족스런 일도 많았는데 어느 순간 늘 <변화>만 바라고 있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내 모습을 향해 고개가 아프도록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왜?’ 갑자기 삐딱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내가 왜 변해야 하지? 변화의 끝은 어디지? 언제까지 변화라는 물을 들이켜야 갈증이 풀릴 수 있을까. 대답을 찾고 싶었다. 서점을 향했다. 한 켠에 빼곡히 꽂혀 있는 자기 계발 서적들. 인생에서 이뤄야 할 몇 가지, 성공을 위한 습관, 누구처럼 살아라 등의 책들에 현기증이 난다.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려도 결승선은 아직 저 멀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대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아서.

“오늘 뭐했냐?”는 친구의 문자. “그냥 똑같지 뭐, 넌?”이라는 내 대답에 “나도, 얼굴이나 잠깐 보자”라는 말에 복잡했던 생각이 멈춘다. 대단한 변화를 이룬 하루는 아니었지만, 소소한 일상을 나눌 친구가 있어서 좋고 고개를 떨굴 때마다 “잘하고 있어, 우리 아들 최고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이 있어서 감사하다. 지하철에 앉아 집에 돌아오는 길, 숨을 쉴 때 마다 옆사람의 들썩임과 온기가 어깨에서 어깨로 전해져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올해도 이렇게 꽤 행복할 수 있겠지.

/humaned@fnnews.com 남형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