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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아침] 골라서 투자받는 ‘세계의 공장’ 중국/양형욱 산업1부 차장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버스로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 출입국사무소. 이 곳은 우리나라 휴전선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저 출입국사무소 근무 경찰이 버스 기사에게 입국 목적만을 간단히 질문한 뒤 5분여만에 통과시켰다. 여권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출입국사무소 주변엔 무장한 멕시코 군인들도 있었지만 경계의 눈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목적지인 멕시코 최북단 티후아나 소재 '엘 플로리도 공단' 내 삼성전자 멕시코 생산법인(SAMEX)까지 교통이 막히는 곳도 없었다.

그렇게 일정을 마친 뒤 미국 입국을 위해 멕시코 국경에 다시 돌아왔다. 한낮인데도 자동차들은 미국 출입국사무소를 중심으로 100m 이상 길게 늘어서 장사진을 이뤘다. 마치 우리나라 명절 연휴에 고속도로 톨게이트나 인터체인지에 몰린 귀경차량 행렬을 보는 듯 했다. 사람들도 도로를 따라 줄을 20∼30m씩 서서 미국 출입국사무소의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곳에선 평상시에도 2∼3시간씩 기다리기 일쑤란 게 현지인의 전언이다. 이는 미국에서 멕시코로 입국했던 상황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한 마디로 미국에서 멕시코로 입국하기는 쉬워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입국하기는 힘든 불균형 현상이 연출되고 있는 것.

이처럼 미국의 문턱이 높은 이유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인원이 미국에서 멕시코로 입국하려는 인원보다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미국에 대한 입국 수요가 멕시코에 대한 입국 수요보다 높다보니 미국측 입국심사는 상대적으로 까다로웠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경제대국 미국에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적 기회가 많기 때문. 실제 지난해 기준 경제규모를 살펴보면 미국은 7조2875억달러로 세계 1위인 반면 멕시코는 1조4820억달러로 12위에 불과할 만큼 차이가 크다.

결국 아쉬운 쪽이 인내력을 가지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는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닌 듯 하다. 한국과 중국간 경제관계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중국 내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 투자 승인이 2년째 '만만디(느리게)'식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초 삼성전자(2조6000억원)와 LG디스플레이(4조원)는 지난 2009년 12월 한국 정부의 승인을 거쳐 중국 현지에 대규모 LCD패널 생산라인 건설을 추진해왔지만 아직까지 중앙정부의 최종 승인통보를 받지 못했다. 지난 1년여간 지연되던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중국 내 투자 승인은 지난해 11월 지방정부 차원의 승인 통보를 받았다가 다시 2개월여간 답보 상태다. '아쉬운 쪽이 우물을 파야 하는 게 세상 이치'라서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불평도 못한 채 중국 중앙정부의 최종 투자승인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아쉬울 게 없는 중국 측은 서두르지 않는 인상이 짙다. 또다시 얼마의 시간을 기다려야할지 모를 일이다.

13억 인구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 입장에서 '입국(투자)'하려는 외국 기업의 수요가 넘쳐나기 때문에 골라가면서 심사하면 그만이다.


과거 외국 기업에 버선발로 뛰어나와 투자를 환영하던 '세계의 공장' 중국이 아니다.

이제 우리 기업은 중국의 달라진 '입국심사기준'을 철저하게 숙지한 뒤 '입국심사대'에 서야할 때다. 순진한 생각으로 중국의 '입국심사대'에 섰다가 무기한 발이 묶여 투자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hwyang@fnnews.com양형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