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떡국이나 먹었는지….”
어머니는 말문을 잇지 못한 채 먼 산만 바라보며 연방 흐르는 눈물을 훔쳐낸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46년 전 어느 날 아침에 거짓말처럼 자신의 곁을 떠난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그러는 사이 중년의 어머니는 어느새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며 오늘도 아들을 애타게 찾고 있는 윤복녀 할머니(80)의 기구한 사연이다.
윤할머니가 찾는 사람은 1950년 1월 26일생인 아들 김성원씨다. 살아 있으면 올해가 딱 환갑인 아들과는 1965년에 생이별을 했다. 정신 장애를 앓고 잃던 아들의 치료를 위해 제주도에 들렀다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떠안게 된 것이다. 남편 김계길씨와의 슬하에 얻은 유일한 자식이라서 충격은 더욱 컸다. 제주도 서귀포시 산 밑에 집을 얻어 거기서 아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나간 아들이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그날 이후 윤할머니는 아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다. 목숨을 버리는 걸 제외하곤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으나 살보다도 빠른 무심한 세월만 흐르고 또 흘렀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 데도 아들에 대한 기억이 있느냐고 묻자 윤할머니는 “어떻게 우리 아이를 잊을 수 있겠느냐”며 “나이가 들어 다른 기억들은 가물가물해지는데 우리 성원이 생각만큼은 오히려 새록새록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까움도 크다.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아들의 얼굴은 생생한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아들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6번지가 본적지인 김성원씨가 실종 당시 서울 동작구 대방동 소재 성남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는 것과 모자가 함께 찍은 빛 바랜 흑백 사진 정도가 전부다.
김씨가 초등학교 시절 찍은 이 사진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 윤할머니의 손때가 단 하루도 묻지 않은 날이 없어 이제는 해질대로 해진 상태다.
“제게 무슨 바람이 있겠습니까. 지금껏 그래왔듯 목숨을 부지하는 한 우리 성원이 찾는 일에 몰두할 겁니다”며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눈을 감으면 여한이 없을 텐데…”라고 또다시 말끝을 흐린다. 윤할머니는 오늘도 교회를 찾아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단 한가지 기도 제목으로.
/golf@fnnews.com정대균기자
■사진설명=윤복녀씨(오른쪽)가 초등학생이던 아들 김성원씨와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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